“님이여, 서해바다 연꽃섬 하의도에서 태어나/86년의 생애를 이 땅 한반도에 바친 님이여 …. 아 가시는 님이여, 우리를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 … 꽃들이 새로 날고 새가 꽃으로도 피어나는 아름다운/우리나라여 아아 제비꽃처럼 향그런 그날을 위하여/김대중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하늘에 바친다!/죽고 못 살도록 그리운 한반도 땅 위에 바친다!”
김준태 시인이 2009년 8월 18일 오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무리한 김대중 제15대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입니다. 김준태 시인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광주매일신보에 실어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알린 시인입니다. 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영원히 기억될 명사 36명’으로 꼽았습니다.
한국현대정치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투옥과 고문, 망명과 추방, 연금으로 점철됐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인권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3전4기 끝에 제15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2000년 21세기 첫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재임 중 IMF 위기의 조기극복, IT산업의 발전, 남북정상회담,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인권위원회 설치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그러나 금융‧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정리해고 일상화, 비정규직 증가, 사회적 약자 부담전가, 사회안전망 확충에도 빈부격차 심화라는 그늘도 컸습니다. 친인척비리(홍삼트리오)로 부패이미지 갖고 물러난 건 아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때 ‘낡은 정치’의 대명사로 ‘청산되어야 할 대상’으로 몰렸습니다. 정치활동 시기가 겹치는 김영삼 대통령, 김종필 총리와 단지 성이 같다는 것 때문에 ’3김’이라 불리면서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됐던 겁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인 박정희 전두환보다 ‘3김’이 더 문제가 많고 책임이 크다는 황당한 논리였습니다.
이른바 ‘3김정치’를 가장 먼저 비판하고 나선 건 한때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김동길 연세대교수였습니다. 김 교수는 “3김씨는 정치 그만 두고 고향에 가서 낚시나 하라”는 ‘3김낚시론’을 주장했습니다.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신당돌풍으로 나타난 ‘2.12총선’ 채 두 달이 안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3김의 때는 이미 지났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40대가 기수노릇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포장했지만 내용물은 독재와 맞서 싸우는 야당지도자들의 정계은퇴였습니다.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이 아니라 야당지도자들을 비판하면서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김동길 교수의 어이없는 주장을 박찬종 의원과 홍사덕 의원이 이어받았습니다.
신군부는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3김을 정치에서 쫓아내려 했습니다. 한 김(김대중)은 내란혐의를 씌워 죽이려했고, 한 김(김종필)은 부패혐의로 재산을 뺏고 쫓아냈으며, 또 한 김(김영삼)은 정계를 은퇴시켰습니다. 3김(특히 김영삼 김대중 양김)을 탄압하면서도 시민의 눈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양김 진영에서 나온 비판이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3김(주로 양김) 비판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박찬종·홍사덕 의원은 갑자기 거물급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3김정치가 잘못된 우리 정치의 원죄이며, 3김청산이 정치발전의 전제조건인 양 제기되었습니다. 양김에게 한국정치 후진성의 책임을 묻는 건 잘못입니다. 탄압하는 독재자들이 나쁘지 탄압 받으며 민주화투쟁을 했던 양김이 왜 책임을 져야합니까.
헌법유린, 군부에 의한 장기집권, 민주주의 후퇴, 정치경쟁자 탄압, 시민의 주권과 인권 유린, 언론 탄압, 지역감정 유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기일을 맞아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안녕한지, 지금의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훗날 어떻게 평가받을 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