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게리 허프바우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
미국 유명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세계화를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에 비유했다. 세계화를 통한 번영을 누리려면 규제 완화, 민영화, 관세 인하 같은 구속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때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선봉에 섰던 미국이 지금은 프리드먼이 말한 황금 구속복을 벗어 던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최근엔 미국에서 만든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통과시켰다. 뉴욕타임스(NYT) 등 여러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세계화가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일까.
국제 경제 분야 핵심 싱크탱크인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허프바우어(Gary Hufbauer) 선임연구원은 서면 인터뷰에서 “세계화의 원동력인 비즈니스 로직(logic)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면서 “상품 분야에서 교역이 과거에 비해 소극적이 된 반면, 국제 서비스 교역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탈세계화는 언제부터 진행됐고, 되돌릴 수는 없을까.
“우선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 상품인가 서비스인가. 둘째,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글로벌 대형 교역국인가 아니면 그보다는 작은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 등 같은 교역국인가. 상품 교역의 둔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무렵부터 진행됐고, 거대 교역국이 둔화를 주도했다. 그 당시에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한 상품 관세 인하가 단계적으로 모두 도입된 상태였으며, 중국을 제외한 거대 교역국의 상품 관세는 이미 평균 5% 미만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무역 제한 조치가 다수 발동됐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상품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 위기 이전 약 50%에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직전에는 40%로 떨어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교역국에선 2010~2019년 GDP 대비 상품 교역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서비스 교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관광·운송을 제외하면 서비스 무역에 대한 비관세 장벽은 관세상당치(tariff-equivalent·시장 완전 개방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외 가격 차에 부과하는 관세)가 30%에 달할 정도로 높았고, (무역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우루과이 라운드는 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은 회계·금융·재무·건강·교육 등의 분야에서 막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부 국가는 온라인 서버를 현지화하는 등 여러 장벽을 부과하려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2000년부터 20년간 서비스 무역 세계화는 큰 진전을 이뤘다. 디지털 혁명의 개인적 예시를 하나 제시하겠다. 작년에 나는 치아에 크라운을 입혀야 했다. 치과 의사는 내 치아에 구멍을 뚫은 뒤 충치 3D 사진을 찍어 코스타리카에 있는 전문 회사에 보냈다. 2주 후 미국의 3분의 2 가격으로 완벽하게 치아에 들어맞는 크라운이 도착했다. 따라서 우리가 탈세계화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상품 교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정점(頂点)을 지났을 수는 있지만, 디지털 혁명 덕분에 서비스 교역은 확대되고 있다.”
탈세계화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서방 세계와 러시아·중국 등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상품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디지털 무역 장벽까지 생긴다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거시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화의 황금 시기’라 일컬어지는 1955~2005년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반세기였다. 세계화를 통해 각국이 자국의 강점을 전문화하고, 이것이 경쟁을 촉진해 기업의 전문성을 높였으며, 선진 기술을 먼 곳까지 전파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거대 대두(大斗) 수출국이 됐고, 일본은 미 자동차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모두 생활 수준이 향상했다. 탈세계화가 일반화된다면 더 이상 세계는 이러한 이점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세계 석유·가스 시장에서 고립된 러시아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술 확산이 느려지면 생산성은 확실히 저하될 것이다. 이에 대응해 많은 국가가 (자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로 전환할 것이고, 이것은 성장을 더욱 늦추게 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어떻게 재편될까.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첨예화함에 따라 중국 이외의 지역 예를 들자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혹은 멕시코 등에 공급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엔 부패나 비숙련 노동자, 카르텔 같은 고유한 문제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쉬운 선택은 아니다.”
탈세계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축소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화할 수 있다.
“어리석게도 대다수가 변호사들로 구성된 무역 공무원들은 물류 관리자들에게 공급망 개선에 관해 한 수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물류 전문가들이 중간재 및 완제품을 공급할 때 지정학적 충돌, 불안정한 정부, 자연재해 같은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을 능숙하게 측정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전문성이 결여된) 정부 관리의 ‘기분 좋은’ 명령은 비용을 높이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무역 관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업체와 운송 회사의 말을 경청하고, 필요에 따라 항만·도로·철도 등을 개선하는 것이다.”
탈세계화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나.
“가장 큰 문제는 세계 경제가 둔화되고 생활 수준이 정체되면서 모든 이가 패자(敗者)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별별 엉뚱한 구제책을 앞세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부상(浮上)하게 될 것인데, 우리는 이미 이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우리가 봐 왔던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경제 성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탈세계화는 경제 성장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세계 경제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중국 사이 신(新)냉전이 발생할 우려는 없을까.
“2018년 당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을 때 나는 동아시아 포럼(East Asia Forum)에 2차 냉전이 시작됐다는 에세이를 기고했다. 많은 비평가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은 현재의 미·중 갈등과 이런저런 식으로 다르다며 논평을 쏟아냈지만, 실수하지 말기를 바란다. 미·중 간 신냉전은 이미 진행 중이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21세기 가장 커다란 외교적 비극이다. 이 문제에 비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탈세계화 시대에 저임금 노동력이 장점인 개발도상국은 어떻게 생존법을 찾아야 하나.
“상품 무역에 있어 탈세계화는 저개발 국가들이 성장의 사다리로 오르는 걸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노동·환경 기준에 대해 더 엄격한 장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다른 저개발 국가에 자국 관세를 낮춰 상품 교역을 확대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이웃 국가들과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무역을 자유화하고 있다. 이들 중 영어를 사용하는 일부 국가는 인터넷 서비스 무역에도 참가할 수 있다. (영어가 공식 언어인) 자메이카와 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거인인 인도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탈세계화 이후 국가주의의 부상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뭐라고 생각하나.
“세계화의 원동력이었던 비즈니스 논리는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약 성자들(Narco-Saints·원제 ‘수리남’)’에도 한국인 사업가가 온갖 역경 속에서 수리남까지 홍어를 수입하러 가지 않나. (세계화의) 역풍이 있지만, ‘돈을 벌 기회’는 여전히 글로벌 상품 교역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온라인 서비스 부문에서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다. 반면 무역 외교는 상업적 유대 관계보다 국가 안보와 지정학적 우려에 기반한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을 장려할 것이다. 인공지능(AI)·양자 컴퓨터 등 최첨단 기술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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