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10월 29일 이태원 심정지 환자 속보가 떴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은 마약 때문이라고 여겼다. 즉, 마약에 취해서 쓰러졌을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있으니 마약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지난 10월 31일 경찰청은 참사와 관련한 마약 사건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이태원 마약 프레임 인식은 개인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태원이 마약의 유통 근거지라고 규정하는 프레임은 국가 기조에서 만들어졌다. 그것은 참사의 시작이었다.
사고 당일 배치 되어있다던 이태원 경찰은 많은 수가 마약 담당이었다. 애초에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 200여 명을 배치한다고 했는데, 137명은 다수가 마약 등 단속을 위한 외사·형사 담당 사복 경찰이었다.
안전관리에 해당하는 정복 경찰관은 58명뿐이었고, 이들도 대개 큰 도로변에 있었다. 이번 사고 현장과 같이 취약한 곳에는 있지 않았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문화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문화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안의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왜 마약 등 수사관이 더 많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실적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정부가 그런 기조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검찰이었다. 지난 10월 14일 갑자기 대검찰청은 전국 4대 검찰청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설치한다고 밝힌다. 심각해진 마약범죄를 막고 마약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대로 이를 확대 강화하는 이가 나타났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1일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제7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이렇게 마약범죄 대응을 강조했다. 경찰이 할 일은 검찰의 지휘 수사를 받아 마약 범죄자를 잡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못 박은 셈이었다.
이날의 발언이 나온 것은 단순히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에 관련한 행사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10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라고 언급했다.
여기에서는 특단의 조치도 언급되었다. 행정부 전체가 갑자기 마약에 집중한다. 이를 받아서 이틀 뒤인 10월 26일 집권당인 국민의 힘과 정부는 당정협의회를 통해 구체화한다. 국회 본청에서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당정협의회를 통해 세운다. 국무조정실 안에 ‘마약류 대책협의회’를 설치하고 무엇보다 향후 1년간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가동하기로 한다. 이제 국회까지 마약 수사에 합류한다.
그런데 이런 마약 문제의 부각은 이전과 다른 현상 때문이었다. 영화 ‘아저씨’나, 드라마 ‘수리남’처럼 물리적 공간의 거래 증가가 아니었다. 바로 SNS, 다크 웹, 암호 화폐 등 디지털 공간을 통해 은밀하고도 광범위하게 퍼지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총리에게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바로 디지털 공간의 마약 증가에 대한 언급이다.
그런데 디지털 공간이 아니라 경찰은 이태원에 마약 주의보를 내렸다. 사탕이나 젤리 형태, 물에 음용하는 마약을 구체적으로 집중 대상으로 삼았다. 핼러윈 데이는 그 중심에 있다고 봤다.
이런 맥락에서 용산경찰서는 31일까지 이런 맥락의 이태원 치안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구도 대책 회의에서 마약 등에 관한 조치를 중심에 두었다. 마약 프레임이 그렇게 행정 조치에도 작동했다. 그들에게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면 안전사고가 아니라 마약범죄가 많을 것이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마약범죄 프레임 때문에 안전은 뒷전이었다.
이런 마약 프레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게 했다.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다. 이 영화는 노태우가 정권이 1990년 10.13특별 조치를 통해 조직 폭력배와 전쟁을 일으킨 사례를 바탕으로 했다. 조폭과 전쟁은 명분이고 당시 낮아진 정권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물 타기 위한 수법으로 대개 국민에게 인식되었다.
낮아진 지지도는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원래 낮은 지지도를 올리기 위한 수법으로 두 가지가 애용된다. 사정 정국과 범죄와 전쟁이다. 이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충분하게 익숙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한동안 사라졌던 검찰발 수법이 부활해 떨군 유탄은 이태원의 청춘들에게 떨어졌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전주에 비해 1만 명 가까이 증가하고 있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론 방역 정책은 더 느슨하게 시행했다. 이는 잘못된 문화적 시그널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실히 지난 3년 동안 봤다.
젊은 청춘들은 3년 만에 노 마스크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일상의 문화적 숨통을 트게 하려고 이태원에 몰렸다. 그런데 수많은 청춘이 몰리는 현상을 보고 그들은 보호해야할 아이들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 대상으로 규정했다. 즉 실적 목표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곳에 온 청춘들은 마약과 관련이 없으며, 오프라인 공간은 최근의 마약 증가원인과는 인과관계 용의점이 적다.
대통령이 용산에 거주지와 집무실을 옮겼고, 정권이 검찰과 같이 마약과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안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살아있을 수 없었다. 주최 기관이나 단체가 없기에 관리 통제가 안 되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국정 기조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참사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은 20세기 1990년이 아니라 21세기 2022년이다. 그에 맞는 리더십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과거 시공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매몰 상황에서 미래 세대는 늘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초점은 그 현장에서 누가 밀었는가에만 모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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