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으로 대표되는 독재의 망령이 윤석열을 통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다.” “죄 없는 김대중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르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최근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반발하며 한 말이다. 말의 내용에 대한 시비나 찬반을 떠나 확실한 것은 지금 전두환이 ‘비난의 최상급’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당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지난달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법원에 제출한 자필 탄원서에서 윤 대통령을 ‘신군부’에 비유하자 여당 내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두환이 이승만 박정희를 제치고 독재자의 대명사 ‘원톱’으로 등극한 모습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그래도 공(功)이 꽤 있는 반면, 전두환은 과(過)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원톱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고 전두환부터 기억하는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돼 가고 있는 점도 자연스레 전두환을 빌런(악당)의 맨 윗자리로 밀어 올린다.
무엇보다 전두환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언급하는 데 있어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영화 ‘헌트’에서 전두환은 내내 암살의 타깃이다. 헌트(사냥·색출)라는 제목은 정보기관 내부의 간첩 색출을 뜻하기도 하지만, ‘베드로(전두환의 세례명) 사냥’이란 암살 작전도 가리킨다.
영화는 이웅평 귀순과 아웅산 테러 등 1983년의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다뤘다. 실화를 그대로 재연하지는 않고 그럴 듯한 픽션으로 가공했다. 가장 핵심적인 소재인 아웅산 테러도 장소와 사건 진행 등을 실화와 다르게 설정했다.
집단적인 기억을 재료로 엮은 이야기지만 ‘시대의 아픔’과 같은 고통스럽고 짠한 정서는 많이 탈색돼 있다. 1983년이란 배경과 그 시대의 스펙터클만 요령 있게 뽑아낸 느낌이랄까.
세간의 평을 보면 ‘대체역사물’다운, 실제 역사와는 다른 결말을 기대한 이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히틀러를 폭탄으로 날려 버리는 미국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년)처럼 전두환을 폭사시키는 통쾌한 판타지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팽팽하게 지탱하는 두 축 중 하나가 ‘응징’인 헌트에선 한쪽만 택하면 영화가 무너지고 만다. 전두환은 실제 역사와 같이 테러로 죽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은 전두환이 물러나고 노태우가 집권한 1988년을 배경으로 한다. 한 젊은 패거리가 전두환의 막대한 비자금을 탈취해 그를 응징한다는 이야기다. 이 허황한 스토리처럼 영화는 모든 부분에서 헛웃음을 자아낸다.
다만 전두환을 묘사하는 방식은 눈길을 끈다. “여기(머리) 휑한 그분? 학살 전문 독재자를 잡겠다고?” “나중에 대머리 아저씨랑 역사박물관에서 꼭 만나요”라는 대사처럼 전두환은 절절한 복수의 대상이라기보다 동네북 같은 만만한 조롱거리, 부담 없는 빌런으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1988년의 역사성과 시대적 의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오색찬란한 레트로를 과시하기 위한 무대로 그 시간대를 택했을 뿐이다. 역사성을 거세해 버리니 전두환에 대한 응징도 별로 통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전두환과 80년대를 대하는 지금 이 시대의 감정이 그렇게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두환이라는 절대 빌런을 향해 울분과 증오와 복수심을 불태우던 때는 어느새 지나가고, “왜 그렇게 심각해”라며 낄낄거리고 장난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천지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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