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서 출발… ‘홍자매’ 2년 전부터 본격 제작
배우 교체 고비에도 총 20주 동안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우영우’ 이어 지난해 K드라마 중 최장
2년 여에 걸친 CG 작업 ‘숨겨진 주연’
8일 종방한 드라마 ‘환혼’에서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은 권력의 독점적 재생산을 위해 은밀하게 쓰인다. 대호국의 왕비(심소영)와 천기를 살피는 천무관의 관장 진무(조재윤) 등 중·노년의 권력자들은 환혼술로 몸을 바꿔가며 죽지 않고 손에 쥔 힘을 영원히 이어가려 한다. 그들에게 몸을 빼앗긴 젊은이는 늙고, 환혼술로 내쫓긴 청년의 정신은 기득권을 쥐었던 주름진 몸에 갇혀 힘을 못 쓴다. 청춘이 말라 죽어 버리는 곳의 미래는 ‘지옥’이다.
‘순리’를 화두로… 2년 전 시작된 이야기
‘환혼’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에 따르면, 홍정은 홍미란 작가(홍자매)는 ‘순리’를 화두로 2020년부터 이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기획했다. “물방울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로 땅에 내려 다시 흐르는 것처럼 인간의 혼도 생사를 거듭하며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데, 이 순환 즉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재의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란 아이디어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환혼으로 대물림된 권력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들춘 드라마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의 관심도 꾸준히 끌어모았다. ‘환혼’ 파트1과 파트2는 최근 1년(2022년 1월 2일~2023년 1월 1일)에 걸쳐 넷플릭스 글로벌 주간 차트에서 총 20주 동안 비영어 드라마 부문 톱10에 올랐다. 같은 기간 톱10에 머문 시간은 지난여름을 달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1주)보다 한 주 짧지만 2021년 공개돼 세계적 신드롬을 낳은 ‘오징어게임'(20주)과 같다. ‘환혼’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파트1(20회)이, 전달부터 이날까지 파트2(10회)가 방송됐다.
이재욱이 처음에 출연 고사한 이유
‘환혼’ 파트1이 아버지가 기문을 막아 술법을 쓸 수 없는 장욱과 천하제일 살수인 낙수(고윤정)의 혼이 깃든 무덕이(정소민)의 코믹한 로맨스로 웃음을 주는 데 주력했다면, 파트2는 남녀 주인공이 비극적 운명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을 비장하게 그렸다. ‘쾌도 홍길동'(2008) 등을 통해 선보였던 홍자매 특유의 한국형 청춘 무협 판타지는 ‘환혼’에서 더욱 과감하고 정교해졌다.
환혼술에 쓰이는 원료를 만들어내는 얼음돌부터 칼로 수기를 튕기는 탄수법까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장르적 실험엔 역경도 닥쳤다. 파트1에서 파트2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여주인공은 정소민에서 고윤정으로 교체됐다. 배우들에게 ‘환혼’은 도전이었다. 장욱을 연기한 이재욱은 처음엔 ‘환혼’ 캐스팅 제의를 고사했다. 거대하면서도 낯선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6일 서울 강남 소재 카페에서 만난 이재욱은 “대호국, 수기, 정진각 등 이런 개념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며 “두 번째 제의가 왔을 때 ‘이런 작품도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출연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기문을 막은 장욱의 서사는 기성세대가 만든 불공정사회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 속 청년과 닮았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이재욱은 “송림 총수인 박진(유준상)이 ‘무엇도 되려 하지 말거라. 그래야 산다’며 장욱에게 벌을 내리는 장면을 찍을 때 갑자기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지?’란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더라”며 “(좌절 속 터진) 그 웃음이 너무 좋다며 감독님께서 방송에 그 장면을 내보냈다”고 촬영 뒷얘기를 들려줬다.
태안까지 가서 잡아 올린 ‘금등어’
곡절이 많았던 ‘환혼’의 실험적 여정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무사히 닻을 내렸다. 술사들의 다양한 술법을 비롯해 진요원의 진기한 법기 등이 신비롭게 시각적으로 표현돼 무협 판타지 장르에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이다. 조원희 257스튜디오 대표에 따르면, ‘환혼’ CG 작업은 2020년 겨울부터 2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귀기”였다. 사술을 부린 술사들을 가둔 감옥과 얼음돌의 기운을 쓰고 난 장욱의 주변을 맴돌던 악귀들이다.
배우들은 ‘환혼’ 촬영장에서 ‘보이지 않는 주연’이었던 CG와 합을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장욱은 경천대호에서 신비한 물고기인 금등어를 낚으며 술법을 수련하는데 이 장면은 이재욱이 지난해 11월 충남 태안 해변에 나가 직접 찍었다. 그는 “노을이 장욱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묻어야 해 직접 해 지는 바다에 가서 그 장면을 찍었다”며 “실존하지 않는 물고기가 ‘바다 위 이쯤까지 뛰어오를 거야’란 제작진의 말만 듣고 진짜 낚시하듯 줄을 당기며 촬영했다”며 웃었다.
양승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