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드미트리우카 지역 고속도로에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 사용한 장갑차와 탱크 세워져 있다. 자녀와 함께 현장을 찾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드미트리우카/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지난 13일부터 2주가량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했다. 앞서 3월5일부터 2주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접경지대를 취재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비롯해 부차, 이르핀, 드미트리우카, 보로댠카를 둘러봤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거리 곳곳에는 참혹한 모습의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시민들의 손에 수습됐다. 자신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집을 폐허로 만든 러시아 군인의 주검 또한 그들이 거둬줬다.
우크라이나 보르댠카 시내의 한 주상복합건물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두 동강 나 있다. 시민들이 주거하는 아파트에 약국, 세무서 등 상업시설이 함께 있던 곳이다. 보르댠카/김혜윤 기자
폐허가 된 이르핀의 한 아파트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던 주민은 “겨울이 오기 전에”라고 짧게 말했다. 지난 3월 이전만 해도 따뜻하고 아늑한 집에서 살았을 그들. 다른 지역에서 새로 살 집을 마련하는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살 집을 짓는 일, 그 꿈이 지금 그들에겐 최우선 과제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6월30일 현재 127일째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은 러시아군에 함락됐고, 돈바스 등 동부 지역은 아직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부차, 이르핀 등 서부 지역에서는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 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민간인 대학살’이 자행돼 많은 주검이 묻혔던 부차시의 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는 마른 흙 사이로 새 풀이 돋아났고,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두 동강 난 아파트에서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보제나(6)는 폴란드 정부의 도움으로 마련된 임시 주거지 모듈러 하우스에 머물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환하게 웃기도 했다. 공습을 피해 병원 지하 방공호에 만든 임시 분만실에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태어났을 아기와 엄마의 포근하면서도 촉촉한 숨결이 느껴졌고, 갓 태어날 동생을 생각하며 한쪽 벽에 ‘전쟁을 그만 멈춰주세요!’라고 쓴 언니의 손글씨에선 절절함이 묻어났다. 또한, 부차시 한 공원에는 장이 열려 살아 있는 시민들은 꽃과 과일, 채소 등을 사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키이우 독립광장 인근인 흐레시차티크 거리는 휴일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드니프로강에는 수영을 하거나 산책으로 잠시나마의 평화를 즐기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우크라이나 부차 슬라비 공원에 차려진 노점상에서 한 시민이 토마토를 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러시아군의 공격이 잠시 잦아들었던 19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키이우 드니프로강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키이우/김혜윤 기자
파란 하늘에서 포탄이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서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보며 경북 울진 등에서 난 큰 산불을 견디고 나온 새싹이 떠올랐다. 검게 변한 산에도 푸른 생명이 돋아나듯, 이곳에서도 환한 웃음이 다시 피어나길 기원했다. 우크라이나를 떠난 다음날 러시아군이 26일(현지시각) 키이우에 있는 민간인 주거지와 유치원, 1천여명이 분주하게 장을 보던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크레멘추크의 대형 쇼핑센터에 미사일을 쏘았다는 소식을 폴란드에 도착해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닐까? 약 2주일 동안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떠올랐다. 무사하기를. 모든 우크라이나인들과 전쟁에 참전 중인 러시아인들도.
여섯살 보제나의 미소 너머, 충치로 상한 앞니가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차에 살던 보제나의 가족은 집에서 폭격을 당해 피난을 떠났고, 현재는 다시 돌아와 임시거주시설인 모듈러하우스에 살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전쟁을 그만 멈춰주세요!’라는 내용의 손글씨가 21일(현지시각) 오전 우크라이나 키이우 3번 산부인과 병원 지하 대피소 벽에 쓰여 있다. 지난 3월 러시아군이 키이우까지 진격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한 한 어린이가 쓴 글이다. 키이우/김혜윤 기자
키이우·부차·보르댠카·드미트리우카/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2022년 7월 1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