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 지향하는 ‘약자 보살피기’ 경쟁 펼칠 때
보육원 출신 남녀 청년 2명의 잇단 극단적 선택 사건 얘기로 이 글을 시작하려니 무척 조심스럽다. 젊은 고인에게 누가 되는 건 아닌지, 남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스무 살도 안 됐다. “삶이 고단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등 남긴 글에서 낭떠러지에 홀로 선 막막한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지만 짐작일 뿐이다.
새삼 국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 해 2500여 명에 이르는 보호종료아동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보육원 퇴소를 앞둔 17세 소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적도 있었다. 보호종료 시점을 만 22세로 올리자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온갖 처방이 쏟아졌지만 그때뿐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8년 만에 벌어진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무슨 거창한 비책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정치가 좀 부끄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들의 슬픈 소식이 전해지던 무렵 정치 뉴스는 펼쳐보기도 민망했다. 국민의힘의 끝없는 내전(內戰)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뭘 위한 내전인가. 이대남을 대변한다는 전직 젊은 대표는 현란한 말 폭탄을 연일 투척하고 있지만 보육원 출신 청년 등의 얘기엔 별 언급도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긴 했던가. 퇴진 요구를 받는 여당 원내대표는 ‘대선 일등 공신’ 운운한다. 그들만의 논리다. 국민도 그렇게 볼까.
민주당은 이재명당으로 10년 만에 당권이 교체됐다. “친명과 친문은 같다”며 ‘명문(明文) 정당’ 운운하지만 허울 좋은 작명이다. 민주당 색깔은 확 바뀔 것이다.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는 개딸이란 친위 부대를 방벽처럼 둘러 세웠다. 특정 정치인을 “아빠”라며 일방적으로 떠받드는 이들에 의해 당의 의사결정까지 좌우된다. 자발적 팬덤인지, 조직화된 팬덤인지 모르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또 다른 딸들에 대해선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비호감 대선이 끝난 지 반년도 안 돼 또 ‘비호감 정치’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비호감은 한국 정치와 동의어가 된 건가. 대선 상대였던 두 사람이 이젠 대통령과 169석 거대 야당 대표로 맞서게 됐다. 곧 만나자는 가벼운 덕담은 오갔지만 ‘시즌2’ 걱정을 하는 건 기우에 불과할까.
국민은 지도자의 등과 품을 본다. 국가가 처한 현실을 꿰뚫어 보고 좌표를 정확히 설정한 뒤 정교한 전략을 세워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지도자의 당당한 등, 그리고 어렵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삶에 안타까워하고 진정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너른 품에서 신뢰와 호감을 갖게 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에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복지 아닌 약자복지를 추구하겠다”고 했고, 보육원 청년에겐 “부모 심정으로 챙겨 달라”고 했다. 그냥 하는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이 대표는 새해 예산안에 대해 “참 비정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내내 그렇게 복지를 챙긴다며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보육원 청년 등 약자들의 삶은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싸움은 본디 무자비하지만 낮은 곳에서 민심의 승패가 판가름 난다. 말로만 민생이니 복지니 하는 건 금세 탄로 난다. 진심으로 약자의 절규에 귀 기울이고, 전 국민 퍼주기가 아니라 정말 절실한 곳에 세심한 ‘핀셋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호감의 문은 열리고 국민 지지도 조금씩 올라갈 것이다.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지혜’의 향연을 보고 싶다.
정용관 논설위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