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212)> 오경훈 전 국회의원(국민의힘)
“필요한 일은 지지자 반대 무릅썼던 노무현 용기 본받아야”
“가정·학교에서부터 토론 습관 축적해야 갈등 다룰 수 있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의 본령은 갈등 조정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조장(助長)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니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정치는 사회적 갈등 완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까.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갈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10월 11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국민의힘 오경훈 전 의원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SNS, 사회적 갈등 강화하는 구조”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마이크를 잡은 오 전 의원은 가장 먼저 한국의 사회적 갈등 지수가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021년 6월 영국 킹스컬리지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념·빈부·젠더·학력·정당·나이·종교 등 7개 부문에서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사회 갈등이 높은 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이 연간 80조 원 정도라고 합니다. 내년 우리나라 국가 예산이 639조 원으로 산정돼 있는데, 갈등 비용이 한 해 예산의 8분의 1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갈등이 심화된 건 SNS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양쪽 주장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한쪽 입장에서 정리된 내용을 확증 편향을 갖고 바라보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정보가 확산되는 구조입니다. 저쪽의 반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논리만을 재생산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 심화의 원인을 짚은 오 전 의원은 곧이어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완화시키고 해소해야 하는데, 이는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법은 ‘해라, 하지 말아라’라고 판결하는 거라면, 접점을 찾고 합의하는 건 정치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 국민의힘에서는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까지도 가처분신청을 내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정치인들이 자기 머리도 못 깎고 있는 겁니다.”
“시급한 국가적 과제는 여야 없이 추진해야”
이어서 그는 현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이 완화되기 어려운 이유를 다섯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첫 번째는 투명성, 그리고 정보 구조입니다. 과거에는 민간이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관에서 계획을 세우고 민간은 그냥 수용해야 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런 관 주도 행태의 잔재들이 남아 있다 보니까 오해와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관료들이 여러 고민을 해서 계획을 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에 대해 또 한 번 설명하고 대화하는 쌍방향 소통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책임 회피입니다. 예전에는 저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정치 지도자들의 여러 선택들을 보면서 요즘은 노 전 대통령이 여러 면에서 용기가 있었고 업적도 많은 분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대표적인 게 제주 강정 해군기지입니다. 아마 강정기지건설 반대투쟁을 하는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사실 강정기지건설에 문제를 제기했던 건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 하에 반대파를 설득했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 과단성은 우리 정치인들이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로는 국가적 과제를 정쟁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여야 없이 국익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국가적 과제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마저 당리당략에 따른 정쟁화를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국가적 과제에 대한 접근법이나 시각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큼은 여야 없이 공유를 하면서 국가적 과제를 이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교육 위해 보이텔스바흐 합의 참고”
“법적 제도적 보완도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갈등 관리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이 없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사회적 손실도 많아지다 보니까 갈등 관리 기본법의 필요성은 계속 논의가 돼왔는데,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이라는 시행령만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갈등이 발생할 소지에 대한 경고나 검토가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공청회나 공론화 작업 같은 부분들이 임의 규정으로 돼있는데, 우리도 이런 부분들을 제도화·절차화한다면 갈등 관리에 순기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시민 교육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법 제도가 좋아도 성숙한 시민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할 겁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했으면 합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독일 교육 과정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합의 사항인데요. 여기에는 논쟁적 수업과 노동법 수업을 반드시 의무교육으로 하게 돼있습니다. 우리는 논쟁적인 사안이 있으면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독일은 어떤 의견이 맞는지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걸로 토론을 하는 과정을 숙달시킵니다. 저는 이런 습관이 축적돼야 사회적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노동법 수업 역시 상대 입장을 고려해 보고, 그 과정에서 공통분모에 대한 합의와 이해 당사자의 타협,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노사 대타협과 같은 갈등 해소를 위한 원칙을 미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블랙박스가 생겨서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악순환만 만듭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도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시민으로서의 자질 교육을 받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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