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연속보도가 시작된 2019년 11월25일치 <한겨레> 1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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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진이 도용됐으니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메시지다.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개인정보를 빼내는 방식의 피싱 수법이 사용된다. 그 순간이 놀라울 정도로 일상적이라,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범죄자들의 덫에 걸려들고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2022, 최진성)는 이렇게 범죄자들이 피해자를 옭아매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이 또 다른 2차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 대신 사건의 범죄자들을 쫓는 추적극 형식을 선택했다. 주요 출연자들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추적단 불꽃’을 비롯한 김완·오연서 기자 등 언론인들이다. 엔(n)번방 사건은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돈을 버는 방식의 디지털성범죄라는 점에서 ‘소라넷’과 본질은 같다. 하지만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 서비스로 피해자를 실시간 협박하고, 암호화폐로 수익을 창출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여성들을 착취하는 비대면 집단 범죄였다.
감독은 영화 초반 2019년 1면으로 엔번방 사건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 무심했던 한국 사회에 의문을 던진다. 다른 언론사는 물론이고 경찰도, 여론도 별 반응이 없었던 탓에 허탈함을 토로한 출연자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가 여성들의 성착취 피해에 무감해져 있었다는 점을 성찰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범죄자들은 이런 무심함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치밀하게 언론의 취재를 압박하며, 범죄 수위도 높여갔다. 취재기자의 신상을 털고, 심지어 언론사의 이름을 붙인 피해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사건을 다시 공론화하고 범죄자를 잡는 데 혼신을 다한 두 명의 20대 여성인 추적단 불꽃의 노력을 영화는 자세히 조명한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영상을 계속 채증하고 관전 공모자로 위장해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경찰에 제공해왔다. 불꽃의 노력에 더해 신고를 한 피해자들의 용기 덕분에 범인이 잡힐 수 있었다.
다큐에 출연한 기자는 자신들의 보도로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토로하자, 피해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사건은 사회적 관심이 시급했고, 사건을 범죄로 인식시키기까지 여론전도 중요했다. 익명의 다수가 해시태그 운동을 했고, 누군가는 지역에서 펼침막을 붙여가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아마 피해자 중 누군가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동아줄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사실 피해자를 괴롭힌 것은 조주빈과 문형욱뿐만이 아니라 엔번방에 있던 수많은 관전자들이다. 그들 중 결국 일부만 검거되었다. 20대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엔번방 일반 가담자 1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4%가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n번방을 무너뜨려라’라는 영화 부제는 영화 속 많은 연대자들의 열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사회를 향한 지속적인 요청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