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에 철강·조선업계 6일 ‘조업중단’ 결정…”예고된 사고에 작업할 수 없다”
역대급 비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되는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국내 상륙에 앞서 조선·철강업계가 ‘조업 중단’을 결정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첫 태풍으로, 무리한 조업 강행은 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4일 조선·철강업계에 따르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6일 조업을 중단할 예정이다. 포스코도 이날 제철소 직원들에게 6일은 ‘잠정 조업 중단’이라고 통보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5일에는 정상출근을 하는데 이날은 선박건조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태풍을 대비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며 “선박 건조 현장에는 수많은 위험이 있으며, 특히 강풍에서는 작업이 불가능한 만큼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이들 조선 3사는 우선 6일 조업중단을 결정하고, 향후 상황을 본 후 중단 연장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협력사에 대해서도 작업에 따라 5일부터 조업을 중단하도록 하는 곳이 있다.
조선 3사의 조업 중단으로 인해 6일 하루에만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최근 하청노동조합 파업으로 납기일이 많이 지연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는 자연재해로 인한 조업 중단으로 납기일 맞추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잠정 조업 중단을 결정한 포스코는 6일 출근하는 직원들의 자차 사용을 제한하고, 여건이 되는 선에서 직원들의 휴가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또 태풍 상륙 당일에는 옥외 활동 및 공장 차량출입용 도어도 가동을 중지한다.
또 자연재난 상황실을 운영해 피해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포항제철소 등은 태풍 대비 비상체제로 전환하고 5일 오전 9시 제철소장 주재 회의로 조업 중단 방안 등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당초 이 기업들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5~6일 정상근무 방침이었으나, 무리한 조업 강행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법 위반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전면 중단 또는 잠정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조치 미비 등으로 인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힌남노의 경우 이미 기상청을 통해 여러 차례 그 위험성이 경고됐으며, 태풍 상륙에도 작업을 지시한 행위는 산업재해 발생을 예측가능함에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조선·철강업계 외에도 힌남노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기업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여수·울산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및 정유공장 등도 야외 조업 중단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일 한반도 상륙…6일 전국에 물폭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매우 강한 세력을 유지하면서 국내로 올라오고 있다. 전국은 5일부터 힌남노 영향권에 들면서 대부분 지역에 비바람이 몰아치겠다. 6일에는 수도권 등에 시간당 최대 100㎜에 달하는 물 폭탄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기상청에 따르면 북상 중인 힌남노는 5일 오전 9시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460㎞ 해상에 도달한다. 중심기압은 920헥토파스칼(hPa), 최대풍속은 54㎧로 ‘초강력’ 강도를 유지한다. 같은 날 오후 9시에는 ‘매우 강’ 상태로 서귀포시 남남서쪽 180㎞ 해상에 이른다.
6일 오전 9시에는 ‘강’ 상태에서 부산 북북서쪽 20㎞ 지점에 상륙할 전망이다. 이날 중심기압과 최대 풍속은 950hPa과 초속 43m로 예상된다. 국내에 상륙한 태풍 가운데 가장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6일까지 전국 강수량은 100~300㎜에 달할 전망이다. 제주 산지는 600㎜를 넘을 수 있다. 5일 수도권·강원영서중부·강원영서북부·충남북부에는 시간당 50~100㎜ 비가 내릴 때가 있겠다. 다음날인 6일에는 지난달 초 집중호우 때와 비슷하게 전국에 시간당 50~100㎜ 넘는 비를 뿌릴 전망이다.
강풍도 주의해야 한다. 5일 밤부터 6일까지 제주·전남남해안·경남해안·울릉도·독도에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40~60m인 ‘초강풍’이 불겠다. 기존 최고치 기록인 2006년 10월 23일 강원 속초시에서 측정된 초속 63.7m에 근접하는 것이다.
힌남노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에 다가오면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역대급 피해로 기록된 태풍 사라와 매미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힌남노가 내륙에 상륙할 때 중심기압은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태풍인 1959년 사라(951.5hPa)와 2003년 매미(954hPa)보다 낮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이 강해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사라 때 849명이 숨지고 206명이 실종됐다. 부상자 2533명도 발생했다. 재산 피해액은 5조4700억원대였다. 매미로 인한 사망자는 119명, 실종자는 12명이었다. 이재민은 6만1844명 발생했고, 피해액은 4조2225억원이었다.
재산 피해는 2002년 태풍 루사 때가 가장 컸다. 20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이 6만3085명 발생한 루사 때 재산 피해액은 5조1479억원에 달했다.
이광연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4일 힌남노 관련 브리핑에서 “힌남노는 정말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슬픔과 회한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달 초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서울시는 선제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3일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한 달 전 침수 피해를 입은 강남·동작·서초·영등포·관악·구로 지역 1만7000여 가구에는 침수 방지 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반지하 등 침수 취약 지역에는 자치구 공무원과 지역자율방재단 등 인력을 투입해 신속한 대피를 돕는다. 하수도 맨홀 뚜껑에는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 중이다.
빗물펌프장과 수문, 빗물저류조, 하천 제방 등 방재시설물도 재점검했다. 모터펌프를 비롯한 응급복구장비 고장 여부를 파악하고, 수량이 부족한 자치구에는 장비를 지원한다.
강풍 피해에 대비해 간판·가로수 등에 대한 안전 점검도 벌인다. 전기·가스·통신·상수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대비하고 신속한 복구 체계도 갖췄다. 한유석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자율적으로 원격수업·임시휴교 등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힌남노 영향권에 들어가는 제주 지역 대부분 학교는 5~6일 원격수업을 한다. 부산시교육청은 5~7일 학교장 재량으로 원격수업으로 전환하거나 임시휴업 등을 하라고 각 학교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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