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매우 귀여운 동물의 대명사다. 긴 귀와 똘망똘망해 보이는 눈, 거기에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코까지. 이 귀여운 동물들은 크기도 매우 작고 울지도 않기에 애완동물로 많이들 기른다.
하지만 모든 토끼가 다 크기가 작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화석기록을 보면 어떤 토끼는 몸 크기가 매우 컸다. 이번 기사의 메인인 누라라구스 렉스(Nuralagus rex)는 과거에 살았던 거대한 토끼다.
▲ 누라라구스 복원도. ⓒ위키피디아 |
점프하지 못했던 과거의 토끼
누라라구스는 지중해 서부 스페인령인 미노르카(Minorca)라는 섬에서 발견되었다. 이 토끼의 화석은 1990년대 초, 후에 이 토끼의 화석을 연구하게 된 카탈루냐 고생물학 연구소의 조셉 쿠인타나(Josep quitana) 박사가 19살이던 때에 처음 발견하였다. 당시엔 거북의 화석으로 알았으나,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토끼라는 것을 알아냈다.
대략 500만 년 전 시기에 살았던 이 토끼는 전신의 상당수(머리, 이빨, 목뼈, 등뼈, 허리뼈, 골반, 늑골, 앞다리, 뒷다리)가 화석으로 보존되었다. 매우 보존율이 좋은 편이다. 덕분에 학자들은 이 토끼의 생태에 대해서 몇 가지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길이가 짧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끼의 뒷다리는 뛰는 데 그리 적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즉, 오늘날 토끼처럼 점프하기보다는 걷거나 뛰는 데 더 적합한 다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토끼가 살았던 지역에서는 이 토끼를 위협할만한 천적이 없던 탓에 빨리 뛰면서 도망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오늘날 토끼보다 더 짧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는 이 토끼가 더더욱 천적의 위협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이 토끼의 진짜 놀라운 점은 이것이 아니다.
▲ 사람과의 크기 비교. 가운데 누라라구스, 오른쪽이 굴토끼. ⓒ위키피디아 |
거대한 몸집
누라라구스의 진짜 놀라운 점은 그 크기에 있다. 화석으로 살펴본 결과 이 토끼의 몸집은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토끼의 몸집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이다. 누라라구스를 연구한 조셉 쿠인타나 박사와 바르셀로나 자치 대학교의 메이케 콜러(Meike Köhler) 박사, 살바도르 모야-솔라(Salvador Moyà-Solà) 박사는 이 토끼의 화석을 토대로 살아있을 당시의 몸집을 계산해내었다. 그 결과 이 토끼는 몸길이는 60cm, 체중은 12kg의 아주 거대한 토끼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살아있는 토끼와 비교해보면 매우 거대한 크기다.
누라라구스의 몸집이 이렇게 크다는 것, 그리고 점프보다는 걷거나 달리는 것에 더 적합한 신체 구조와 작은 두 귀는 이 토끼를 크게 위협할만한 천적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쿠인타나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렇게 다른 토끼와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 배경에는 대륙의 움직임이 있었다. 누라라구스의 조상은 530만 년 전 시기에 해수면이 1.5km 낮았을 때 미노르카섬에 들어왔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나가지 못하고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천적이 없기에 이 토끼는 굳이 점프할 필요성이 줄어들어서 점차 그 능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쿠인타나 박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당신이 천적이 없다면, 왜 굳이 뛰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누라라구스는 빙하기 시기에 미노르카섬이 다른 섬과 연결되어 다른 포유류들이 섬에 들어오면서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즉, 크고 강한 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는 게 강한 것이라는 자연선택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누라라구스가 몸집은 커졌지만, 대신 환경이 변하자 다른 포유류와 경쟁에서 밀렸던 것처럼 말이다.
연구 및 자료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Nuralagus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dn20273-five-million-year-old-monster-bunny-couldnt-hop/
Quintana, J., Köhler, M., & Moyà-Solà, S. (2011). Nuralagus rex, gen. et sp. nov., an endemic insular giant rabbit from the Neogene of Minorca (Balearic Islands, Spain).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 31(2), 231-240.
이수빈 공주교육대학교 과학영재교육 전공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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