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서일본신문 ‘20년 교류’가 담아낸 생생한 역사
입력 : 2022-11-06 16:45:49 수정 : 2022-11-06 17:01:08
이승훈 기자 [email protected]
월드컵, 사격장 참사, 소녀상 등 국경 넘어 심층 기사 쏟아내
“한·일 월드컵, 부산 실탄사격장 화재 참사, 동일본대지진, 구마모토 지진, 소녀상 설치…”.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이 지난 20년간 공동 취재한 굵직한 사건·사고들이다. 타국 이슈를 단순히 전해 듣는 수준이 아닌 현장 목소리를 담은 심층 기사를 쏟아냈다. 이밖에 한류열풍, 불매 운동 등 한·일 관계에 따른 각국의 ‘길거리 민심’을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이는 2002년부터 양사가 운영 중인 ‘파견(교환)기자’ 제도 덕분이다. 양사는 올해 기자 교류 20주년을 맞아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는 특별 지면을 마련했다. <서일본신문>은 일본 후쿠오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규슈 지역 대표 신문사다.
■양국 이슈 취재 파견기자 효과 극대화
“발을 내디딘 도시는 여전히 흔들렸고 몇몇 주민은 불안감에 피난소가 아닌 차량에 머물렀습니다. 피해 주민의 아침 식사는 주먹밥 반 개, 점심은 빵 한 조각이었습니다.”
본보 김준용 기자는 2016년 4월 진도 7의 대지진이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를 찾았다. 계속된 여진에도 불구, 이웃 나라의 참상을 발 빠르게 전하기 위해 과감히 현장에 뛰어들었다. 급식 배급용 차로 이동하고 교민 대피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등 4일간의 취재는 긴박하게 이뤄졌다. 이는 ‘日 구마모토 지진 현장을 가다’ 연재, 한·일 재난 대응 비교 기획 등 차별화된 보도로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서일본신문>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듬해 11월, 본보에 파견 중인 다케쓰구 미노루 <서일본신문> 기자가 지진이 덮친 포항 현장을 찾았다. 본보 기자와 동명대 건축공학과 등 전문가와 동행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한동대와 주민 대피소 현장 분위기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이때의 현장 취재 내용을 기반으로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과 비교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지진’ ‘원전’ ‘과거사’ 등 양국 이슈에 대한 취재는 파견기자 제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례들이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는 본보 기자 3명이 현장에 급파됐고, 2017년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때는 본보 조영미 기자와 <서일본신문> 쓰르 가즈코 기자가 교류 역사상 처음으로 양사 공동지면을 기획했다. 서일본신문은 민감한 자국 내 이슈에도 불구, 양 시민의 시선을 절반씩 할애해 보도했다. 쓰르 가즈코 당시 파견기자는 “일본인 기자는 소녀상 단체 취재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부산일보가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2009년 11월 부산 중구 실내사격장 화재 참사 때는 <서일본신문>이 다수의 기자를 파견해 중학생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 중부경찰서의 수사 진행 상황 등 단독 기사들을 보도했다.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4년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해서도 현지 추모 분위기 등을 칼럼 형태로 생생하게 전했다.
■선명하게 그려낸 도시와 문화
20년간 양사가 보낸 파견기자만 모두 31명에 이른다. 큰 사건·사고 기획뿐 아니라 ‘오금아 기자의 지금 규슈에서는’ ‘시오이리 기자의 부산읽기’ ‘김종열 기자의 규슈는 지금’ 등 각 도시의 문화·도시적 이슈를 담은 정기물을 교류사에 연재했다. 한·일월드컵, 한류열풍, 지방선거 등의 대형 이벤트는 물론이고 연말 분위기, 장애인 고용 현황, 체감 반일지수 등 일상적 소재를 통해 양도시의 차이를 짚어냈다.
규슈 최초로 노년층 대상의 서점 추진, 일본 지자체의 ‘빈집뱅크’ 제도 등 부산의 미래 상황과 맞닿아 있는 기획도 많았다. 본보는 일본 지역 캐릭터 사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구마모토현 캐릭터 쿠마몽’을 한국 언론 최초로 보도하기도 했다. 오금아 당시 파견기자는 “고독사나 빈집 문제 등은 지금은 부산의 최대 이슈이지만 파견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예측가능한 미래를 볼 때 일본의 사례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서일본신문>도 아시안게임·부산국제영화제의 뒷이야기, 양국 관계에 따른 부산 저비용항공사의 예약률 변화 등 의미 있는 문화·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양국의 사건보도 차이, 비정규직 대응 차이 등 독자의 흥미를 끄는 기사들도 주목받았다. 2002년 <부산일보>로 처음 파견된 후지이 미치히코 전 기자는 “부산아시안게임 때 일본 선수를 응원하는 부산시민을 인터뷰했는데, 앞서 한일월드컵 때 한국팀을 응원하는 일본인을 보고 감격했었다고 하더라”라면서 “2002년은 대중문화 교류와 함께 일반 시민이 서로의 일상적 모습을 본격적으로 접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부산-규슈 가교 역할 되새겨야”
양사는 2005년, 2011년 등 정기적으로 기자 좌담회를 열고 그간의 파견기자 제도의 성과, 보완점 등을 살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은 항상 “양사 발전뿐 아니라 양 지역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자”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인터넷 기사 번역 사이트 통합, 양 도시 간 스포츠행사 개최 등 구체적인 제안도 매번 나올 정도로 민간 교류에 힘썼다. 부산-후쿠오카 포럼 등에도 매년 함께 참석하며 양 도시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02년 처음으로 <서일본신문>으로 파견된 김승일 기자는 “과거사로 소원해지고, 코로나로 끊긴 길은 이어져야 한다”면서 “두 지역 정론지의 본연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본보에 파견 중인 히라바루 나오꼬 기자는 “큰 이슈는 물론 서로의 사회나 삶의 순결을 전달할 수 있는 기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일본인회 이이부치 마사토시 회장은 “두 신문사의 기사가 양 도시로 잘 전달되도록 국경 넘어의 인터넷 구독자도 많이 확보했으면 좋겠다”면서 “양국의 중앙 뉴스보다는 부산, 규슈 지역 한정의 기사를 많이 게재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