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황금의 K세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열여덟 살 임윤찬의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이에 앞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첼리스트 최하영, 잔 시벨리우스 콩쿠르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작년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의 박재홍 등 클래식 음악은 한국인이 우승자를 휩쓸고 있다.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기억도 생생하다. 대중문화도 비슷하여 올해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앞서 ‘미나리’의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봉준호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연거푸 대상을 받았다. BTS(방탄소년단)는 빌보드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라이브 공연도 했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올랐다.
국가 브랜드(nation brand) 개념을 만든 영국의 사이먼 앤홀트에 따르면 기량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개인들을 끌어들이는 능력, 이러한 개인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국가 경쟁력을 더 높여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 이 두 가지가 핵심 요소인데 한류를 중심으로 한 K브랜드가 바로 그러하다. 한때 짝퉁, 3류로 치부되었던 K브랜드는 이제 창의력, 첨단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극적인 변화는 한류 드라마에서 시작되었다.
여의도의 한류 콘텐츠 현장에 있었던 내가 생각하는 초기 한류는 결핍과 인정 욕망의 소산이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라는 문화적 결핍, 인프라스트럭처의 결핍에 시달리면서도 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열정이 넘치는 인재가 몰려들어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1997년 MBC의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에 소개되고, KBS의 ‘겨울연가’가 바다 건너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K브랜드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대장금’. 한국 문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외국인들에게 한국도 고유한 언어, 의복,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젓가락 공동체’라는 동방(東方) 유전자와 결합하여 순식간에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고 사랑과 성공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연결되면서 한류는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등장하게 된다. 불과 20년 사이에 벌어진 극적인 변화이다. 물론 몇 번의 침체기와 과도기를 거쳤고 그때마다 한류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냉소적인 기류가 흘렀다. 조기 발굴과 집중훈련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류는 고비를 넘고 일어나 K팝과 K무비 등 2차, 3차 위대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 비결은 무얼까? 저명한 음악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주장하는 ‘시니어스(scenius)’라는 문화생태계 개념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 ‘scene(풍토)’과 ‘genius(천재)’를 합성한 신조어로 ‘풍토가 만들어낸 천재’라는 뜻이다. 재능 있는 개인들이 한 시대, 비슷한 장소에 모이고 인프라가 뒷받침될 때 폭발적인 에너지로 전혀 새로운 창의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예술과 문화를 분석할 때 천재의 ‘고독한 위대함’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천재의 재능이 끼친 공헌은 크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이 시대 K현상은 한두 사람의 천재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누리호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피땀, 300개 기업의 참여가 있었던 것처럼 한류는 시니어스라 부르는 문화생태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피렌체 르네상스 예술은 후원자라는 튼튼한 내수 덕분에 꽃을 피울 수 있었고,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 등 네덜란드의 황금의 17세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컬렉터와 예술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창의성과 제작 능력 못지않게 자본과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K브랜드의 궁극적 열매는 기업과 국민, 차세대에게 돌아간다.
K라는 이름의 시니어스 문화생태계는 지속가능할까? 소통 방식에 달려 있다.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 소통이다. 곧 리더의 소통 방식 변화를 말한다.
[손관승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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