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년 만에 다시 ‘정치 9단’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11일 국가정보원장에서 물러난 그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평론가로 돌아와 방송가를 누비고 있다. 매체와의 인터뷰도 잦아졌고, 날카로운 현안 분석은 여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통령은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게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IMF 아닌가”라고 경고장을 날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근 야당을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보고 ‘아, 윤석열 정부도 결국 사정으로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지원 전 원장이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통해 풀어내는 6월의 정치 사용설명서.
“윤석열 대통령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한다”
“‘문재인이 답변하라’는데 그럼 삼라만상을 윤석열이 답변할 건가?”
“대통령 언행은 정치…백화점·빵집 가서 쇼핑? 국민들 이질감 느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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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원로인 박 전 원장은 6월21일 윤석열 정부의 서해상 피살 공무원 ‘월북’ 발표 뒤집기와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사정당국에서 모두 겨냥하고 있구나”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고발 여부에 대해 그러한 보도도 있더라. 무엇을 잘못해서 고발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해당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서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피살 공무원 유족 측의 고발 방침을 언급한 것이다.
“SI 첩보나 정보 공개 조심해야”
이에 진행자가 ‘문 전 대통령이 타깃이란 거냐’고 묻자, 박 전 원장은 “저도 그렇게 느꼈다”고 답했다.
박 전 원장은 이어 “그리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 전 대통령이 답변하라’는데 그러면 앞으로 삼라만상을 다 윤석열 대통령이 답변하느냐. 그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비공개 속기록을 공개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에 대해선 “국방위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물론 고인이나 유족이 요구를 하기 때문에 사실은 밝혀져야 되지만 어디까지나 한미 정보동맹의, 군사동맹의 틀 안에서 SI(특수정보) 첩보나 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며 신중론을 폈다.
그는 “만약에 우리 정찰 자산을 공개했을 때 북한이 우리의 정찰 자산, 첩보 능력을 판가름할 것 아닌가. 그리고 자기들의 내용을 바꿔 버린다”며 “그랬을 때 상당한 정보 블랙아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 안보가 말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똑같은 국방부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해경과 다르다고 하면 그것이 문제 아닌가”라며 “제발 이러한 문제에 정치적 개입이 안 되기를 바란다 하는 정도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 물가 문제에 총력을 경주해야지 만약 사정으로 빠져 가지고, 국민 지지는 있겠지만 그렇게 포퓰리즘으로 가면 안 된다”며 “오직 경제다, 물가다, 이걸 좀 매진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불행히도 제가 말한 게 거의 다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고 뼈있는 지적을 했다.
박 전 원장은 법무부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피해자의 국가 배상금 반환 이자를 감면한 데 대해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진짜 잘 결정했다”고 환영한 뒤 “역시 한 장관이 실세는 실세인가 보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 이승만 독재 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우리가 어떻게 이승만 자유당 경찰국가로 퇴보하는가. 있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검찰총장 인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 한동훈 장관이 사실상 검찰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면 안 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국정원장(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해서 얼마나 많은 피해, 파탄이 있었는가”라고 꼬집었다.
국정원 파일 “이용 안 하지만 존재”
박 전 원장은 6월1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정원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 모든 분들의 존안자료, X파일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고 언급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해당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말조심 하겠다”고 즉각 사과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박 전 원장은 6월14일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국정원 존안 파일’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용하지는 않으나, 존재는 한다”면서 “(하지만)우리는 열어 보지도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그는 “어떻게 됐든 역사청산 의미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 지난 60년간 수집된 자료를 파기하자고 했는데 못 했다”면서 “(존안 자료 언급과 관련) 굉장히 비판도 있고, 그러면서도 박지원 전 원장이 폐기하자는 주장이 옳다는 사설이 많이 나더라”고 전해 ‘존안 자료 폐지‘를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염려를 하기 때문에, (존안 자료 언급을) 안 해줬으면 좋겠다 해서 오늘부터 말 안한다”며 파문 진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박 전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이른바 ‘소통 행보’와 관련 “대통령의 모든 언행은 정치이고 상징”이라면서 “특히 유명 백화점, 유명 빵집, 이런 데 가서 쇼핑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질감을 느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은 굉장히 정제돼야 하며, 참모들이 충분히 검토해서 써 주는 원고를 읽는 식으로 말을 해야 한다”면서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소위 도어 스테핑, 아침에 출근하면서 기자들 만나서 즉흥적으로 하는 것도 신선하고 좋아 보이지만 저러다가 실수하면…대통령의 발언은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데 ‘사고 안 날까?’ 하는 염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부부 저러다 실수하면 큰 문제”
대선 과정에서 “내조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한 뒤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박 전 원장은 “김건희 여사가 봉하에 가서 권양숙 여사를 만나 ‘참아라’ 하는 선배의 충고를 들었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면서 “그런 소통도 중요하지만 아니, 제2부속실, 영부인 관리를 왜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 배우자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전 원장은 이어 “선거 때 영부인 노릇 안 하겠다, 안 시키겠다고 했더라도 사실 경륜 있는 인수위원회가 구성됐다면 그 공약을 털어줬어야 한다”면서 “저렇게 다니다가 또 실수하면 굉장히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박 전 원장은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비서실을 통하지 않고 개인 팬클럽을 통해 사진을 공개하는 것과 관련,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공식적인 관리를 하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영부인은 개인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개인이 아니다”면서 “아니, 그런데 무슨 친구들하고 놀러 간 것도 아니고, 부부가 일상에서 그러면 안 된다. 공식적으로 일을 해야지 대통령이, 영부인이 아무리 사적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사적으로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