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한국은 어느 순간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적 성지가 됐다. 한국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것은 세계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과 입지가 매우 강화되고 튼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세월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에 오기를 열망하게 됐고, 그러한 열망을 실현하려는 이들이 한국에 이미 많이 포진하면서 세계에 긍정의 메시지를 스스로 전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는 한순간에 이러한 호의적인 상황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번에 희생당한 외국인 청춘들은 K팝 컬쳐를 사랑한 이들이었다. 이란인 희생자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드라마 ‘대장금’으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 이도 있었다. 중학교 때는 K팝에 매료돼 갓 세븐의 팬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커버댄스를 추고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2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에 올 수 있었지만, 참사를 당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자유의 나라였다. 그들의 나라에 비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었다. 이란인 소미에(Somayeh)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평소에는 학업에 힘쓰고 한국의 명소를 다녀 SNS에 공유했으며, 평소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다른 이란인 희생자도 서울은 안전하고 삶의 질이 좋고, 고국보다 자유로운 곳이라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러시아 노보쿠즈네츠크 출신 크리스티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한국에 가기를 열망했다. 오랜 준비 끝에 한국에 온 뒤에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고 K팝 춤과 노래를 여가 시간에 즐겼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미 애틀랜타 출신의 교환학생 스티븐 블레시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음식을 사랑했다. 한국을 탐험하듯이 즐겼던 청춘이었다. 켄터키대 간호대 3학년생 기스키 씨는 우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클럽 회원이기도 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을 넘은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 8월 한국에 공부하러 온 18살의 고즈치 안은 “한국 문화와 패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유족이 언급했다. 도미카와 메이(富川芽生)는 홋카이도 출신으로 한국 문화와 가수에 관심이 높았고, 한국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했으며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다.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딸을 막을 수 없었다고 아버지가 말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온 청춘들이 이태원을 방문했던 것은 모두 한국 문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문화 현장이 궁금해서이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한국의 자유와 질서 그리고 안전관리를 믿었다. 하지만 그 사랑과 믿음의 결과는 참혹했다.
외신들 반응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NYT) “한국의 번창하는 기술 및 대중문화 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라고 언급했다. 영국의 BBC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국제무대에서 케이팝(k-pop)을 주도하는 이미지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의 아이러니”라고 평했다. 영국의 BBC는 “많은 사람은 당국이 젊은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젊은이들은 비단 한국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을 사랑해서 어렵게 방문한 많은 젊은이가 소중한 목숨을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블레시의 부모는 한국에 가면 자신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당국에 대한 엄청난 분노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의 장례 절차와 송환이 매끄럽지 않았다. 한국을 사랑한 K팝 팬들에게 우리가 해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우리 케이 브랜드 가치가 세계 젊은이들에게 달리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K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핵심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개방과 소통, 그리고 본질과 진실에 대한 형상화이다. 영화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에서 보여준 주제의식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우리 사회의 치부이자 모순이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드러내 문제를 해결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담론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도 마찬가지다. K팝 컬쳐 팬들인 세계 청춘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을 회복하고 다시 문화적 성지가 되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철저한 진상 조사와 진실의 공유밖에 없다. 이를 가로막거나 은폐를 한다면 다른 독재 국가와 다를 바가 없으므로 미래의 청춘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참사 이후가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자 시험대가 되는 이유다.
- 카카오톡 채널: 천지일보
- 전화: 1644-7533
- 이메일: [email protected]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
추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