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vs 종북주의 시비로 대외군사전략 논란을 역사 전쟁으로 비화하고 상호 적대감만 키워 정국을 냉각시키고 있다
결국 소모적 역사 논란을 지양하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새 국가전략과 대외군사전략 차원서 논의하려면 정치경제 체제 개편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논란은 역사 전쟁의 무한 반복을 통해 상호 간 적개심을 동원하며 기성 체제 공생자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방함과 다름 아니다
왜 한국의 정치권은 한·미·일 연합군사훈련 같은 문제를 두고 여야 간에 ‘친일파 vs 종북주의자’ 논란을 벌일까? 우선 논란의 당사자인 정치인들의 시선과 말과 행동에 기대서 보자면, 서로를 진짜 친일파 혹은 종북주의자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상대가 친일파이고 종북주의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집안의 내력과 과거의 전력을 뒤지면서까지 다툼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
친일파가 아니어도 한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일본을 중시하는 시각과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종북주의자가 아니어도 그럴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지정학적 특성상 국가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함에 있어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따져야 할 것은 일본 혹은 북한을 중시해야 하는 정세 상황의 특성과 그 기대 효과이다. 그런데 그와 관련한 논의가 본류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를 친일파로 혹은 종북주의자로 낙인찍으며 역사 전쟁으로 비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의 참담하고 공포스러운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다. 모든 이가 ‘원수를 사랑하는 성자’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참담함과 공포스러운 경험과 기억을 털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친일파나 종북주의자로 쉽게 의심하고 낙인을 찍어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다. 특히 친일파나 종북주의자가 국정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겪었던 분들 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 정치권의 친일파 vs 종북주의자 논란의 당사자들은 그 시절을 겪은 적이 없는 이들이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게 일련의 해석과 가공을 거쳐 계승된 기억과 정보와 지식이다. 이것들이 친일파 혹은 종북주의자로 여겨지는 서로에 대해 적대감을 부추긴다. 아니, 서로 적대시하는 이들을 친일파나 종북주의자로 바라보게 하고 그리 호명케 한다. 여기에는 가족사나 학계 일각의 연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겠으나, 가장 중요한 영향 요인은 해방과 분단과 전쟁을 거친 이후의 역사 전개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정치·경제 체제이다. 이 체제가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일련의 해석과 가공을 거쳐 다시 살려낸다. 군부 권위주의 세력이 주도한 ‘민중배제적 성장주의’ 체제, 그리고 군부 권위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 ‘제한적 민주주의’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제한적 민주주의
민중배제적 성장주의 체제와 이의 유지 및 재생산을 담당하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 세력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들을 ‘빨갱이’라고 몰아 적대시했다. 이런 반공주의적 해석에 기댄 안보논리를 동원해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경험했고 북한이 실질적인 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런 해석에 기초한 기억과 정보와 지식의 계승은 용이했고 도전 세력을 억압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었다. 생명과 인권을 박탈하는 것마저 정당화했을 정도다. 이때 유의할 것은 민주주의와 사회경제 체제에 관한 급진적 사상과 이념과 이론을 탐색했던 대학생과 지식인들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학대받는 산업노동 현실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민중에 대해서도 그리했다. 베트남 전쟁과 중동 건설 현장 등에 가 피와 땀을 흘리며 국제 반공주의 동맹 세력으로서의 책무와 산업화의 고통을 앞장서 짊어진 이들이 민중이었는데도 그리했다.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제 성장이 시급한데, 이를 가로막는 분배에 대한 성급하고 과도한 요구를 하는 민중은 결국 체제를 위협하는 빨갱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혹은 노동계급을 선동해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빨갱이들에게 포섭되었기 때문에 그리한다는 거였다.
군부 권위주의 세력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0·26 사태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김영삼 정권의 군부 세력 숙청을 거치며 권력집단의 지위를 상실한다. 하지만 반공주의와 민중배제적 성장주의는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된다. 반공주의와 민중배제적 성장주의의 사회경제적·지역적 지지기반을 계승하는 세력이 도전 세력과의 타협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자기변형’을 거쳐 지금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같은 세력으로 존립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체제를 제한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민주당계 세력도 그 체제의 한 축
그런데 이 체제의 시작과 함께 북한이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과 위협이 오히려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과 민중배제성의 유지를 통해 세계 10위권 국가의 반열에 오르는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대미관계의 조정 그리고 노동권의 신장을 위한 시도는 옛 레퍼토리에 기대어,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체제를 위협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종북주의로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집권세력이 새로운 국가전략과 대안체제를 모색할 능력과 의지가 없으면 자신의 경쟁세력, 즉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처럼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여겨지는 86세대 운동권 출신이 주축인 제1야당 세력을 종북주의자로 몰아 흠집을 내려고 할 공산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같은 제1야당 세력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대미관계 조정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전략과 대안체제의 지향성을 실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지향성을 구현하려는 시도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의 확보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전략 자체에 대한 지지 이전에 제1야당 세력에 대한 대중적 신뢰 기반이 민생 개선의 성과에 기초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수의 국민들이 새로운 국가전략의 도입과 실행에 따른 큰 변화를 감수할 의사를 갖고 지지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민주당은 그러한 신뢰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신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민생 개선의 노력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의도적 배제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민중의 희생이 따르는 성장주의의 지속을 용인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한적 민주주의인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민주당 계열 세력이 제한적 민주주의 체제의 수립과 유지의 한 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하나의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데,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려 정당성을 허무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게 바로 지금과 같은 친일파 논란이다. 국민의힘 계열 세력의 시조 격일 수밖에 없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전력과 강제동원 위안부와 노동자 문제 등을 남겨놓은 한일협정의 미흡함, 그리고 그 계승세력들이 주도해 온 대일관계에서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소극적 태도 등을 지금 집권세력의 대외군사전략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접근이 과연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종북주의 시비를 가져와 앞서 언급한 바처럼 대외군사전략 논란을 역사 전쟁으로 비화시키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키워 정국을 냉각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소모적인 역사 논란을 지양하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정말로 새로운 국가전략과 대외군사전략의 차원에서 논의하려면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개편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친일파 vs 종북주의자 같은 논란은 역사 전쟁의 무한 반복을 통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동원하면서 기성 체제의 공생자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