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등교사 극단 선택 ‘비극’
교단 2년차인 1학년 담임교사 숨져
교사노조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
해당 초교 “학폭 신고 사안 없었다”
아동 학대 신고 땐 대처방법 없어
현장선 “자동녹음 의무화를” 호소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이 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교직 사회는 교권 침해가 도를 넘었다며 분노하는 분위기다.
서울교사노조는 20일 “해당 교사가 사망하기 전 담당 학급에서 학생끼리 다툼이 있었던 이후 학부모의 항의 방문을 받았다”며 “고인이 올해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는 제보를 동료 교사들이 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이날 고인과 학부모들의 마찰 여부에 대해 수사해 달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서울교총 등 교원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서이초에서는 지난 18일 2년차 교사인 1학년 담임교사가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학교폭력(학폭) 처리에 대한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에 대해 서이초는 “이 학급에서는 올해 학폭 신고 사안이 없었고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일도 없다”고 반박했다. 학폭 처리 과정에서 정신적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날 서이초 앞을 찾은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폭과 민원으로 고통받는 선생님이 너무 많아 해명을 믿기 어렵다”며 “진상조사로 명확히 밝혀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악성 민원은 물론 정당한 수업지도나 학폭 처리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무력감을 느낀다는 교사들도 많다. 교사노조가 지난 5월 조합원 1만 13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최근 5년간 교권 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 있다’고 답한 교사가 3025명(26.6%)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교사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학교 전화기에 자동녹음 기능 설치라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지난달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녹음기능이 없는 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건 학부모에게서 “싸가지가 없다. 넌 사이코패스”라는 폭언을 들은 일도 있었다. 소송에 휘말릴 경우를 대비하려면 최소한의 통화녹음 자료는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교권 침해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마련됐지만 학부모의 교권 침해를 차단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장원 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학부모 민원을 받거나 아동 학대로 신고되면 대처할 방법이 없어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교권 침해가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돼 균형 잡힌 교육현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예·명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