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가스공급 60% 감축 보복에
독·오스트리아 등 석탄화력 고육책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 합의
불과 8개월 만에 정반대 행보
전문가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 경고
20일(현지시각)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풀하임에 있는 니더아우셈 석탄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풀하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 등에 천연가스 공급을 제한하자 유럽 주요국들이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 가동을 늘리는 ‘고육책’을 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위기 앞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석탄발전’을 점차 없애기로 한 인류의 공약이 뒷걸음질하는 모습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20일 회원국들에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는 장기적인 목표에서 뒷걸음치지 말라. 우리는 이 위기를 더러운 화석연료로 뒷걸음치지 않고 전진하는 데 이용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가 유럽연합을 향해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을 써가며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호소한 것은 러시아가 독일 등에 공급하던 천연가스의 양을 60%나 감축하겠다고 한 뒤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이 석탄발전을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천연가스의 40% 정도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가 지난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노르트스트림1(발트해 해저로 독일~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을 통해 공급하는 천연가스의 양을 60% 감축하겠다고 밝힌 뒤 독일은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독일 경제·환경부는 19일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긴급조처를 발표하면서 그 대안으로 석탄발전소를 더 많이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로베르트 하베크 장관은 이에 대해 “가스 사용을 줄이기 위해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도 19일 그동안 가동하지 않던 가스발전소를 석탄발전소로 바꾸기로 했고, 네덜란드 역시 20일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35%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한 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는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도 독일을 따라서 석탄발전소 재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공급 감축과 천연가스 가격 폭등으로 인해 ‘패닉’에 빠진 유럽 주요국들이 어쩔 수 없이 석탄화력을 일시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불과 8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때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phase down)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흐름을 이끈 것은 탈원전과 탈탄소를 동시에 추진하던 독일이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해 12월 ‘신호등 연정’ 출범을 선언하며 전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의 목표보다 8년이나 당겨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없애겠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하지만 올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지난주 러시아의 조처 이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50% 이상 급등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 견주면 6배 이상이나 오른 것이다. 는 독일 등의 결정에 대해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이번 위기를 (에너지 생산에) 오염을 덜 만드는 대안으로 이행하는 데 시간을 끄는 구실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감량 위협에 대응하는 “긴급대책을 시행 중”이라며 △에너지 절감 △수입처 다변화 △가스를 우선 공급받는 산업 지정 등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대책은 러시아에 의존하던 가스 공급처를 중동 등으로 다변화하는 내용이 중심이어서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의 수요를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기후정책 분석기관인 기후행동추적단(CAT)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이 석유와 가스에 대한 새 투자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에 갇혀버릴 위험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니클라스 회네 신기후연구소 교수도 화석연료 발전을 늘리면 “단기적 에너지 공급에는 도움이 되지만 새 기반시설은 만들어지면 수십년 동안 존재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기후 목표를 상실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