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4000자 분량 연설문 낭독
전날 한밤 전격 담화 소식 알려
담화 후에도 논거로 자료 배포
일부 발언엔 의사 반발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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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방송이 나오고 있다. 2024.4.1 홍윤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일 51분에 걸친 생중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료개혁의 추진 근거와 당위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의 배석이나 질의응답 없이 참모진만 대동한 가운데 각종 수치 자료가 총동원된 장문의 연설문을 낭독하는 방식을 택했다.
짙은 남색 정장에 하늘색 넥타이 차림의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선 채로 1만 4000여자 분량의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의대 2000명 증원 결정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발언이 길어지자 윤 대통령은 세 차례 물을 마시며 목을 가다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게 된 데는 의료 공백 장기화로 국민 우려와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당초 의대 정원 증원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최근에는 의정 간 중재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또 4·10 총선을 앞두고 부담을 느끼는 여권의 목소리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시기에 국민을 설득할 내용을 담아야 하는 만큼 윤 대통령은 담화 발표 직전까지 참모들과 연설문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의대 2000명 증원 판단의 근거로 여러 통계와 자료를 제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권 출범 이후 총 37차례 의료계와 의사 증원 논의를 이어 온 과정도 나열했다. 대통령실 참모진 사이에서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김에 객관적 자료들을 두루 제시해 보자’는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대통령실은 담화가 끝난 뒤 의사 인력 관련 논의 경과 등을 포함한 참고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며 윤 대통령의 논거를 뒷받침했다. 자료에는 논의 날짜와 주요 논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담화와 참고 자료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를 많이 한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의 담화는 전날 밤늦게 결정돼 오후 10시 35분쯤 언론 공지를 통해 알려졌다. 대통령실에서도 의료개혁 현안을 담당하는 소수의 참모가 아니면 담화 논의 진행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은 담화가 의료계에 대한 강경 기조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의사 증원 반대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사전 통지와 면허정지 처분 통지 등기 우편송달을 거부하면 공시송달을 할 수 있다”는 일부 발언이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실은 강경 발언이 아니라 정책 이행 원칙을 세운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입장이다.
고혜지 기자
2024-04-02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