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컨설팅업체 전방위 조사
연예·정재계 친분 쌓아 투자 권유
“1억 넣으니 5000만원 수익” 현혹
매수·매도 반복 ‘통정거래’로 조작
휴대전화로 투자해 추적 피한 듯
3년간 다수 명의 써 적발 어려워
금융당국이 27일 ‘SG증권발 폭락사태’를 일으킨 주가조작 세력의 사무실,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무더기 하한가로 시작된 주가 폭락 사태가 관련 투자자만 1000명이 넘게 연루된 대규모 주가조작 범죄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주가조작 혐의 세력은 주로 연예인과 정재계, 의사 등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투자자를 모집한 후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올리고, 투자자 명의 휴대폰을 이용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이날 이번 사태와 관련 H투자컨설팅업체의 서울 강남구 사무실과 관계자 명의로 된 업체, 주거지 등을 전방위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 입장에서 관계기관이 협력해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압수수색도 금융위를 포함해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남부지검 합동으로 34명이 진행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4일부터 선광, 하림지주 등 8개 종목은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을 통해 매물을 쏟아내며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8개 종목의 주가는 지난해 4월부터 이달 초까지만 해도 강세를 보이며 1년여간 급등했는데, 일부 종목은 일주일도 안 돼 주가가 70% 넘게 급락했다. 이날도 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은 개장 직후부터 하한가로 직행하며 지난 24일 이후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주가조작 세력은 의사 등 전문직을 상대로 친분 관계를 쌓은 뒤 ‘당신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라고 접근해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국 주식은 저평가돼 있고, 우리가 투자하는 주식은 대주주가 주가를 높이면 나중에 상속 시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주가를 눌러 놓은 것”이라고 소개한 뒤 “현재 주가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게 정상이라 이를 정상화시키고자 우리가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실제 대주주의 지분이 커서 거래되는 주식의 양이 비교적 한정적인 기업들이 대상이 됐다. 대성홀딩스의 경우 대주주 지분 비율이 72.74%에 달했다. 유통 주식이 적다 보니 주가조작이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맡겨 놓고 그냥 딱 신경을 끊어라. 간섭할 거면 아예 투자를 하지 말라. 투자할 사람이 줄을 섰다”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최소 투자금액은 보통 1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한 투자자가 1억원을 투자했다면 몇 달 뒤 총 1억 5000만원을 돌려주고, 5000만원의 절반인 2500만원은 수수료 몫으로 떼어 갔다.
사건과 관련된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투자한 돈 이상으로 수익을 내줬기 때문에 초기 투자보다 더 많은 돈을 끌어다가 다시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투자 수수료는 직접적인 계좌 이체가 아닌 골프 레슨비나 물품대금 명목 등의 방식으로 지급했다.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세력이 정상 거래인 것처럼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거래’로 시세를 조정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다른 투자자들이 주식 매매에 뛰어들면 수익을 내고, 다시 자금을 끌어다가 주가를 올리는 수법이다.
법조계와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주가조작은 흔한 수법이지만 이번 사건처럼 3년여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동원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변호사는 “장기간 다수의 명의를 활용해 야금야금 주가조작을 시도했기 때문에 적발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한국거래소가 가격 급등 정도와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친 계좌의 집중도를 살펴보는데, 1000명이 넘는 다수인의 명의가 활용됐다면 개인투자자로 보고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자 명의로 개설한 대포폰을 사용해 직접 투자처럼 보이도록 하는 수법도 썼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번 사태 관련 투자업체 사무실에서 주가조작 등 부정 거래에 사용됐을 수 있는 휴대전화 200여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컴퓨터를 사용했다면 특정 인터넷주소(IP)에서 여러 명의 대규모 거래가 이뤄져 금융당국의 의심을 받기 쉽다”면서 “휴대전화는 손쉽게 장소 이동이 가능하기에 추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수연·민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