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바람 불던 가을날 정체된 강변북로에서 들린 절박한 호소.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누구였을까. 누가 <쾌걸춘향>(2005) 주제곡 이지의 ‘응급실’을 함부로 볼륨 높여 소환했을까. 스냅백 쓴 신도시 아버님? 그냥 흔한 차장님? 범인은 국산 소형차를 운전하던 남성이었다. 서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Z세대와 나는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유행가야 시대를 관통할 수 있지만, 2000년대 노래만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패션부터 시작해 아이템, 콘텐츠, 비주얼 등 다양한 분야에서 Y2K 풍조가 목격됐다. 왜 Y2K가 다시 유행하는가? 유행 공전 주기 20년 설을 따르자면, 밀레니얼 세대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더 젊은 세대는 브랜드 로고 플레이나 럭셔리 브랜드의 스트리트 스타일 외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다 과거의 감각을 찾아냈다고 볼 수도 있다.
Y2K 경향은 패션에서 먼저 목격되었고, 그 파급력도 강하다. 반짝이는 질감, 형광 색상, 눈부신 소재는 흑백의 미니멀한 트렌드가 주도했던 세기말 스타일과 대비를 이룬다. 또 품이 넉넉한 운동복, 와이드 데님이나 데님을 덧댄 스타일도 유행했다. 그게 지금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여튼 패션을 시작으로 Y2K 유행이 전 분야로 번졌다. 새천년이 엊그제처럼 느끼는 M세대 에디터가 Y2K 유행 아이템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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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렁치렁 불편한 게 좋아”
무선보다는 유선, 스트리밍보다는 CD.
불편함에서 감성을 발견한다.
휴대용 CD 플레이어
Z세대는 CD에 익숙하지 않다고? 아이돌 앨범은 CD로 발매되어왔다. 앨범 초동 판매량이 아이돌의 인기를 증명하는 요소 중 하나고, 팬들에게도 중요한 물건이다. K-팝에서 CD는 꾸준히 판매되어왔고 공식적으로 CD는 사라진 적이 없다. 단지 스트리밍보다 불편했을 뿐이다. 하지만 만질 수 있다는 CD의 물성은 19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나 보다. Y2K 시대의 상징인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다시금 팔리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뉴진스가 선보인 CD 가방이 예약 판매 당일 모두 소진될 정도로 Z세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점도 CD 플레이어의 부활을 증명한다. 하지만 충고는 하고 싶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충격 흡수 기능을 확인할 것. 걸으며 음악을 듣고 싶다면 말이다
유선 이어폰
에어팟 프로 2세대가 나온 마당에 유선 이어폰이 재유행한다는 소리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Y2K 흐름 중 하나는 불편하지만 안심되는 것이다. 무선 이어폰은 충전 스트레스, 분실 위험이 있는 데 반해 유선 이어폰은 그런 걱정이 없다. 선 꼬임이 귀찮고 AUX 단자가 없어서 못 쓰는 상황이 있을 뿐. 기능성 외에 Y2K 감성을 자극한 것도 한몫했다. 유선 이어폰으로만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선호되고 있다. 유행을 따라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발매한 아티스트들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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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이 쓰던 걸?”
세기말 형들이 애용하던 안경과 목걸이를 아들 뻘이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스포츠 선글라스
체육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스포츠 선글라스를 썼고, 훈련소 교관도 훈련에 앞서 스포츠 선글라스를 쓰고 비기를 내뿜었다. 2000년대에는 스포츠 선글라스가 멋있지 않았다. 그냥 강해 보이는 용도와 햇빛을 차단하고 시력을 보호하는 기능성 말고는 특별한 게 없었다. 나이가 다섯 살 더 들어 보이는 효과도 있었고. 그런 스포츠 선글라스가 Y2K 감성을 타고 부활했다.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스포츠 선글라스를 쓰고 힙한 포즈를 취한 Z세대 사진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밀레니얼 세대의 PTSD일 뿐. 얼굴에 밀착된 커다란 스포츠 선글라스 쓴 젠지 모델들은 늘고 있다.
목걸이
그냥 목걸이가 아니다. 체인 목걸이다. 2000년대 초 아저씨는 건강을 위해 금이나 게르마늄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었다면, 20대 청년은 체인 목걸이를 걸었다. 체인 목걸이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멋있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자유롭게 보이고 싶다면 해골이나 십자가 등 큼직한 펜던트를 달았다. 한동안 남자들이 목걸이를 멀리했는데, Y2K 감성은 다시 목걸이를 소환했다. 체인 외에 진주로 만든 목걸이도 Y2K 감성 아이템으로 분류된다.
Y2K 감성을 톡톡 뿌린 대중문화
트와이스와 뉴진스의 공통점은? 지난여름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 외에도 Y2K 감성을 활용한 점이다. 트와이스 ‘톡 댓 톡’은 Y2K 감성을 콘셉트로 뮤직비디오를 선보였고, 뉴진스는 스타일부터 음악,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Y2K로 설정했다. 대중문화에서 Y2K 코드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2000년대 음악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녹여내 가벼운 느낌을 연출한 곡이나, TLC 등 멜로디가 돋보이는 올드스쿨 힙합을 차용한 아티스트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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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화질로 찍어”
저화질 노이즈 이미지로 찍은
셀피는 조금 더 특별하다.
빈티지 캠코더
캠코더마저 돌아올 줄은 몰랐다. 8mm 캠코더가 ‘일본 빈티지 캠코더’라 불리며 중고 장터에서 단돈 몇만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영상 앱’의 레트로 필터로 만족할 수 없었던 진짜배기 Y2K 마니아는 8mm 캠코더로 영상을 촬영하고, 그걸 다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수고로움을 거치며 브이로그를 만든다. 인기 있는 빈티지 캠코더는 세로형 그립의 산요 작티 시리즈와 소니 DCR-TRV 같은 소형 모델이다. 요즘 발매되는 클래식한 외형의 미러리스 카메라와 달리 실버 플라스틱으로 마감되어 Y2K 감성이 진하다. 여기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면 빈티지 카메라 완성이다. 영상은 <만원의 행복>의 셀프 카메라 퀄리티를 보장해 Y2K 감성을 채우기 충분하다.
피처폰
아이즈원 출신의 예나는 지난 8월 미니 앨범 <SMARTPHONE> 무대에서 피처폰을 들었다. 피처폰은 본연의 통화 기능은 끝났지만, 카메라 기능은 남았다. 피처폰 저화질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는 사진 앱 필터로도 재현하기 어렵다. 해상도 낮은 조악한 이미지는 오직 피처폰의 작은 이미지 센서로만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피처폰으로 사진을 찍어보지 않은 세대, 피처폰을 소유해본 적 없는 세대에게 피처폰의 매력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검고 얇고 네모난, 비슷하게 생긴 스마트폰과 달리 모양도 제각기인 피처폰은 디자인도 독특하다. AI 보정이 기본인 요즘 셀프 카메라와 달리 오로지 각도로만 예쁜 모습을 남기는 건 순수해 보인다. 피처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면 번거로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Y2K 감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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