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판매량에만 집중해선 안 돼…환경과 브랜드 가치 모두 따져야”
“좋아하는 멤버들의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해서 아니면 판매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서 음반이 한 번 나올 때마다 10장 가까이 사는 거 같아요.
“
직장인 김모(26) 씨는 1년에 한 아이돌 그룹의 음반만 약 40장씩 구매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다른 팬들은) 아이돌과의 영상 통화 이벤트에 당첨되기 위해 한 번에 몇백 장씩 음반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K팝 인기로 국내 음반 시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팬들이 같은 음반을 다량 구매하면서 포토 카드나 팬 사인회 초대권 등 앨범 부속물만 챙기고, 정작 CD 실물을 버리면서 음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써클차트(옛 가온차트)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팝 실물 음반은 올해 상반기에만 최소 3천500만 장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집계를 시작한 2010년 이후 같은 기간 최다 판매량이다.
이는 판매량 순위 1위부터 400위까지만 합산한 수치여서 실제 판매량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케이팝포플래닛의 이다해 활동가는 “포토 카드나 팬 사인회 초대권을 위해 다수 음반이 불필요하게 판매되고 버려지는 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낭비이자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전 세계 K팝 팬들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해 3월 결성한 단체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 3월 한 달간 전국의 K팝 팬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음반 8천 장을 모으기도 했다.
보유한 K팝 음반만 약 600장에 이른다는 직장인 백모(27)씨는 “음반 구매는 팬 사인회 참석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며 “(소속사들이) 이윤을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환경 오염, 낭비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밝혔다.
팬덤 사이에서도 음반 중복 구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자 소속사들도 음반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13일 컴백한 그룹 SF9은 새 음반 ‘더 웨이브 오브나인'(THE WAVE OF9) 음반에 포함된 인쇄물의 80% 이상을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
그룹 NCT 드림 또한 지난 5월 발매한 정규 2집 리패키지 음반 ‘비트박스'(Beatbox)를 친환경 소재로 제작했다.
그러나 음반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는 걸 넘어서 음반 판매량에만 집중하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팬덤 위주의 음반 중복 구매가 오히려 K팝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빌보드는 2017년 국내 음반 판매량 집계 방식을 다룬 사설에서 “스트리밍과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팬들이 실제로 CD로 음악을 듣는 걸까 아니면 (음반 구매가) 팬덤 문화의 값싼 장신구에 불과한 것일까”라며 판매량에만 집중하는 한국 음반 시장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차트 올리기’를 위해서 음반을 대량 생산·판매하면 ‘판매량 증가가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판매량에만 집중하면) K팝의 브랜드 가치와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예전엔 음반 판매량이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증명했다면, 요즘엔 차트 진입을 위해서 팬덤이 구매하는 것”이라며 “늘어나는 음반 판매량을 마냥 좋다고 판단하기 전에 환경 파괴 문제 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