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도중 엑스(X) 계정을 통해 “EU 이사회(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가입 협상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협상 개시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정상회의가 끝난 뒤 채택될 공동성명에 명시될 것으로 보인다.
EU 정상들의 이날 결정은 앞서 지난달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의 협상 개시를 권고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예상 밖으로 빨리 합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U 가입 협상 개시 문제는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한 사안인데,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거부권을 끝까지 행사하겠다고 예고하면서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EU 소식통은 “오르반 총리는 (표결 당시) 사전동의 아래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전했다. 헝가리를 제외한 나머지 26개국 정상들만 회의장에 참석한 상태에서 만장일치가 이뤄진 셈이다.
오르반 총리도 미셸 상임의장의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헝가리는 이 잘못된 결정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며 기권했음을 시사했다. 이날 결정으로 우크라이나로선 지난해 6월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받은 지 약 1년 6개월 만에 ‘EU 울타리’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물론 가입 협상이 정식으로 개시되더라도 실제 회원국 합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전쟁 장기화 여파로 서방의 연대 의지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 나온 결과인 만큼 우크라이나로선 중대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즉각 X 계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이자, 유럽 전체를 위한 승리”라고 환영했다.
EU 정상들은 이날 우크라이나, 몰도바에 대한 가입 협상 개시 외에 조지아에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해서는 필요한 개혁 조처가 완료되면 가입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예고 없이 독일을 깜짝 방문했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이날 X에 올린 공지를 통해 “오늘 헤센주에 우크라이나 대통령 방문으로 보안 조처가 강화돼 일시적 도로 폐쇄와 통행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유럽·아프리카군 사령부가 있는 비스바덴 미군 공항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스바데너 쿠리어 등 현지 언론은 추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미국은 비스바덴 미군기지에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조율을 위한 센터를 설치하려 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곳에서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교육·훈련과 서구의 무기 공급에 관한 조율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미국 방문을 끝내자마자 노르웨이 오슬로를 찾아 북유럽 5개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과 정상회의를 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거듭 호소했다. 그 뒤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브뤼셀로 향하지 않을까 예상됐는데 비스바덴을 찾은 것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트해 연안의 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에스토니아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8000만 유로(약 1136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날 수도 탈린에서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Javelin)과 기관총, 탄약, 여러 종류의 군용차량과 선박, 잠수장비를 공급하기로 결의했다. 하노 페프쿠어 에스토니아 국방장관은 “이번 지원패키지는 에스토니아의 방위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최대한 유익하도록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