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하되 슬픔을 오래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가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를 두고 한 말이다.
희생자만 156명. 그중 10대가 12명, 20대가 104명인 이번 참사는 전국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특히 가요, 방송, 영화, 공연 등 대중문화예술계를 ‘올스탑’ 시켰다. 막대한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 앞에서 가수들은 노래할 수 없었고, 예능인들은 대중에게 웃음을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애도의 뜻을 전하며, 슬픔을 함께 했다.
대중문화예술계는 국가적으로 대형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움직임을 멈췄다. ‘희로애락’을 대중에게 선사하는 직업들이기에 ‘슬픔’이란 감정이 공유되는 시기에 기쁨과 즐거움까지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 기간이 끝나고, 유족들의 감정이 추슬러진 후 그리고 대중들의 일상이 회복된 후에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대중문화예술인들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중문화예술계는 완벽하게 회복되기까지 약 6개월여가 걸렸다.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중의 ‘정서적 허락’이 공유된 시점이 이 정도 기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대중문화예술계는 이전과 다소 다르다. 애도는 하지만 ‘슬픔’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를 일찌감치 일상 회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예술계가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서도 이전처럼 대중의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잇따라 다양한 공연들이 취소됐지만, 11월 중순 이후 공연들은 여전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앨범 발매 역시 연기됐지만, 과거와 달리 ‘무기한’이 아니다. 딱히 기한을 정해놓진 않았지만 대부분 ‘일정 조율’에 방점을 찍었다. 영화도 공식적인 행사는 취소했지만 그렇다고 개봉은 연기하거나 취소하지는 않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대중음악 공연 업계 관계자들의 움직임이다. 가수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예정된 공연을 그대로 진행할 것을 밝히면서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 관에서 예술 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연행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본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생각의 여름이 밝힌 소신은 많은 예술인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다. 가수 장재인도 이 글을 SNS에 공유했고, 배순탁 대중음악평론가도 이 글을 공유하면서 “언제나 대중음악이 가장 먼저 금기시되는 나라다. 슬플 때 음악으로 위로 받는다고 말하지나 말든가. 우리는 마땅히 애도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애도의 방식은 우리 각자 모두 다르다. 다른 게 당연하다. 방식마저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월호, 천안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대형 재난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특히 희생자들이 나오는 재난 이후 슬픔이 오래갈 경우 오히려 사회가 위축되고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가는 것을 겪었다. 기억도 하고 애도도 하지만 빨리 털어내지 못하면 오히려 사회적 손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정부가 5일까지 애도 기간을 정하고, 각 지자체들도 각각 일정 기간 따로 애도 기간을 정했기에 그 기간 동안 행사나 축제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콘서트 등은 오히려 하루빨리 이태원 참사의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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