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주년을 맞은 커뮤니티비프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축제 분위기를 도맡고 있다. “영화제는 단지 영화를 틀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영화로 시민, 관객, 감독, 배우 등 모든 참여자가 뒤섞여 소통하는 곳.”이란 정미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커뮤니티비프에선 모두가 영화인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인다. ‘관객참여형 프로그램의 다채로운 실험장’이란 프로그램 설명처럼 관객이나 배우가 직접 상영작을 선정하고, 시민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기도 한다. 3년 만의 전면 정상화를 공표한 영화제의 활기를 몸소 느끼고 싶다면 커뮤니티비프만큼 좋은 놀이터가 없겠다.
– 영화제가 전면 정상화된 만큼 커뮤니티비프의 규모도 커졌을 것 같다.
= 작년 커뮤니티비프 상영작이 86편쯤이었고, 올해는 160편이다. 무려 115회차 상영이다. 커비로드 제작영상이나 게임씨어터 상영작을 포함하면 더 많다. 부산, 전주, 부천에서 열리는 3대 영화제를 제외하면 국내 영화제에서 보통 100~150편을 상영하니까 단순 편수로만 따져도 상당히 큰 규모다. 부산 지역 곳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방네 비프도 작년보다 두 군데 늘어난 16개 구·군에서 열린다. 상영회엔 게스트와의 만남, 사전 공연, 로컬 푸드존까지 아주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돼 있다. <더 테너 : 리리코 스핀토>를 상영하기 전에 유지태 배우가 직접 관객과 인사하고, 유지태 배우가 연기했던 배재철 테너가 공연하는 것처럼 유의미한 행사가 많다. 부산관광공사가 협업해준 덕에 용호별빛공원과 영도구 엑스스포츠광장에선 광안대교, 남항대교 같은 부산의 멋진 야경을 만끽하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또 금정산 범어사처럼 “이런 곳에서 정말 영화를 튼다고?”할 정도로 구석구석에 있는 지역에서까지 영화제를 즐길 수 있으니까 많은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 일반적인 영화제 프로그래밍은 아니다. 어떤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추구하나?
= 작년엔 ‘경험의 플래너’라는 말로 정의했다. 올해는 ‘소개팅 주선자’라고 표현하고 싶다. 세상의 좋은 것들과 멋진 사람들을 영화제란 자리에 모두 초대한단 뜻이다. 그 속에서 관객과 참여자들이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대화하고, 그 시간을 음미하도록 돕고 싶다. 영화제 팀원들 뿐 아니라 참여하는 관객들 모두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획하고, 전략을 짜고, 방향을 찾아가는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신인, 지역, 여성 등의 새로운 목소리를 옹호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또 영화 선정에 있어서는 최대한 독창성을 중시하는 편이다. 머리를 써서 계산하며 만든 영화보다는 창작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작품을 선호한다. 이런 영화들이야말로 어떤 편견을 조장하기보단 따뜻한 마음과 엉뚱한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믿는다.
– 대표 프로그램인 ‘리퀘스트 시네마’가 늘 좋은 호응을 거두고 있다.
= 올해도 60건의 프로그램을 접수했고, 결과적으로 29개가 편성됐다. 리퀘스트 시네마를 시작할 때부터 기대했던 부분인데, 올해엔 특정 분야의 팬덤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줬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 인피니트나 배우 손석구, <미쓰백>과 <윤희에게>처럼 팬층이 두꺼운 영화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소개하고 싶은 상영작은 <영화: Fishmans>다. 밴드 피쉬만즈의 팬덤이 일본 밖에선 상영되지도 않은 피쉬만즈 다큐멘터리를 직접 발굴해서 상영한다. PC통신 시절부터 활동해온 오랜 팬덤이라서 더 뜻깊은 기획이 됐다. 이뿐 아니라 리퀘스트 시네마 시작부터 함께해준 인도 영화, 홍콩 영화 열혈 마니아들도 꾸준하게 여러 영화를 찾아주고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에 못지않은 안목에 늘 놀라고 있다.
– ‘마을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도 규모가 커졌다.
= 전년도 시범사업을 거쳐서 영화 제작 편수를 8편으로 대폭 늘렸다. 부산도시재생지원센터, 영화의 전당이 도와서 시민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었고 결과물을 상영한다. <정순>의 정지혜 감독, <성덕>의 오세연 감독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실력파 영화감독 8명이 멘토를 맡아줬다. 참여자 선정에 있어서는 외국인 유학생, 청소년, 마을공동체 등 부산이란 도시의 문화 다양성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다. 시민들이 자기 마을을 직접 촬영하다 보니까 지금껏 보지 못했던 부산의 아름다운 풍경도 많이 담겼다. 또 김정근 감독과 문창현 감독이 시민 감독들의 촬영 일대기를 메이킹 다큐멘터리 4편으로 만들어서 상영하는데, 작년 신나리 감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호응이 무척 좋았던 만큼 기대하셔도 좋겠다. 상영 후에 감독들과의 대화 자리도 마련돼있으니 많은 참여 바란다.
– 더 소개하고 싶은 행사는?
= 너무 많다. (웃음) 우선 3년 만에 부활한 ‘취생몽사’가 있다. 정말 추천하고 싶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시실리 2km>처럼 괴작이라 불리는 특이한 영화를 비롯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코미디나 고수위 작품들을 음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단돈 2만 원으로 영화, 숙박, 술까지 챙길 수 있으니 얼마나 ‘혜자’로운 행사인가. 영화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감독, 배우와 채팅할 수 있는 ‘마스터톡’도 있다. 올해엔 김지운 감독과 이병헌 배우가 <달콤한 인생>으로, 변영주 감독과 신혜은 프로듀서가 <화차>로 관객과 만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전국적으로 확대할 ‘8mm 필름변환상영회’도 첫선을 보인다. 과거 부산은 항구 도시란 지리적 이점 덕분에 서울보다도 더 활발하게 8mm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니 기획에 가장 알맞은 출발점이다. 우리 영화를 보존하고, 수집하고, 공유하는 가치 있는 영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정성일 평론가가 직접 영화를 골라 상영하고 관객들과 끝장 토크를 펼치는 ‘블라인드 영화제’도 시네필 관객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 또 주목할만한 게스트가 있나?
= 이것도 너무 많은데. (웃음) ‘커비컬렉션’ 행사에서 노상윤 감독의 케이팝 아티스트 콘셉트 비디오 <film by rohsangyoon>이 상영된다. 노상윤 감독은 엔시티, 아이브, 더보이즈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 최근 아이돌 ‘덕후’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다. 그런데 걱정은 GV였다. 모더레이터로 영화평론가를 초청하기도 모호하고 대중문화평론가를 부르기도 모호해서였다. 문득 <성덕>의 오세연 감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연락했는데 흔쾌히 섭외에 응해줬다. 예매 오픈 1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반응 좋은 만남이 됐다. 감독을 겸하는 배우 게스트들도 많이 참여한다. 대표적으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너와 나>로 초청된 조현철 배우가 여러 편의 상영작도 고르고 토크 행사도 진행한다. 연기와 연출, 여러 분야에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구혜선 배우도 5개의 단편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다. 180명이 넘는 게스트가 있다 보니 모두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모든 상영, 행사에 뜻깊은 게스트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