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초지능, 초연결 초실감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확장 현실(XR) 기술, 5세대(5G) 통신 네트워크, 클라우드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AI)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가 중요해졌다. 현실을 초월한 디지털 가상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특정 세대나 영역이 아닌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치와 선거 변화 1단계
AI 메타버스 시대에 정치와 행정 영역 변화도 불가피하다.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은 AI 메타버스 시대 미래정치를 전망하면서 정치·행정 시스템의 대격변을 예고했다. 정부 위상과 대의정치가 크게 흔들리면서 탈중앙 시대에 맞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토대로 ‘AI 메타버스’가 고도화되면서 정치와 선거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 단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단계는 현실 세계 활동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진입단계다. 이 단계에서 정당 형태는 기존 오프라인 정당 온라인화를 자극하면서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정당 형태로 수렴될 것이다. 각종 선거운동도 메타버스 안으로 확장되며 상호 융합이 이뤄질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전례 없는 언택트(비대면)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메타버스 기술이 주요 선거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포트나이트’와 닌텐도 게임인 ‘동물의 숲’ 등을 활용해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고 선거유세를 벌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선 레이스에서도 메타버스 선거 운동이 선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 ‘직방’의 디지털 플랫폼 ‘메트로폴리스’에서 경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낙연, 박용진, 이광재, 원희룡 등 당시 후보들은 토종 메타버스인 ‘제페토'(ZEPETO)에 맵을 꾸미고 선거 캠프 출범식을 치르는 등 국민과의 만남을 가졌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는 ‘게더타운'(Gather Town)에서 폴리버스 캠프를 열고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선거에서 메타버스 활용은 상대적으로 레거시 미디어 이용이 적은 MZ세대의 정치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이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 기술로 특정 정치인 외모와 언행을 모방해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선거운동을 선보였다. 국민의힘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는 자신을 본뜬 ‘A.I. 윤석열’을 만들어 홍보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인공지능 이재명’을 선보였다. A.I. 윤석열은 ‘위키윤’, ‘인공지능 이재명’은 ‘명탐정 이재명’으로 불렸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기술은 ‘적대적 생성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이용해 동영상·사진 및 목소리를 위변조하는 딥페이크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메타버스가 선거 캠페인에 제공하는 이점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이 예전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앞서나가는 후보라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또 “메타버스 아바타를 활용하면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서 “이는 줌과 같은 영상회의 도구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가상현실 기기나 증강현실 기기를 이용한 ‘실감형 메타버스’가 일반화되면서 메타버스 내 선거운동과 정치 활동은 더욱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와 선거 변화 2단계
2단계는 발전단계로 총 경제활동에서 가상세계 비중이 현실세계의 그것과 비슷해질 무렵이다. 여기에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빠르게 보완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다. 상당한 부분에서 직접 투표와 의사 결정권 일시 위임을 가능케 하는 ‘유동적 민주주의'(liquid democracy)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다. 선거운동에서 딥페이크 기술로 버추얼 인플루언서 정치인이 일상화될 것이다.
정치와 선거 변화 3단계
3단계는 성숙단계로 인간의 총 경제활동에서 가상세계 비중이 현실세계의 그것을 확연히 넘어간다. 이 시점엔 가상세계(온라인 접촉)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빈도가 잦아지고 그 대상은 꼭 사람이 아니라 AI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 영역도 오프라인 세계에서 온라인 가상세계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기술이 정치 영역에서 다양하게 실현되면서 국가 귀속감, 소속된 공동체 역할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중앙당과 같은 집중화된 권력과 정치구조가 대변혁을 맞이할 것이다. 세대, 종교, 성별로 인한 선입감이 사라진 메타버스 공간이 아고라 광장처럼 보다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해져’메타버스 광장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여기에 ‘무결성(integrity)’ ‘비밀성(privacy)’ ‘검증성(verifiability)’ ‘부인방지(non-repudiation)’를 특징으로 하는 블록체인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구축되면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메타버스 공간은 직접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페이스북 메타 플랫폼 ‘호라이즌’은 참여하는 시민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한다. 향후 AI 메타버스를 통해 성숙한 민주 시민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엔 가상세계에 아바타를 만들어 놓고 어느 순간 뇌가 착각을 일으켜 내가 진짜 저 존재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유체 이탈 실험'(Out 0f Body Illusion)이 이뤄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을 유색 인종 몸 안에 놓고 그 아바타를 경험하게 하는 실험이다. 가상현실에서 신체 바꾸기 실험은 다른 인종, 다른 성별을 서로를 이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상현실 경험이 실제 세상에서 갖고 있던 편견과 차별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메타버스가 갖는 큰 가치 중 하나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면 차별과 혐오가 줄어들 수 있게 만들고, 더 많은 경험을 하다보면 더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메타버스 광장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3단계에선 정치 조직 형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가상세계에서 완전하게 탈중앙화된 자율적 조직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정치 DAO 참여자는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를 기본으로 중앙 통제 없이 모든 사람이 참여해서 어떻게 조직을 만들고 운영돼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고, 동등한 자격을 갖고 각종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심지어 활동 성과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기존 정당도 이런 정치 DAO로 변화될 수 있다. 박혜진 바이야드 대표 주장처럼 DAO는 코드에 의해 통제되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으로부터의 자유, 불신으로부터의 지유, 불이행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부 변화와 미래전략
AI 메타버스는 행정 영역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 정부를 만들기 위한 정책 일환으로 ‘메타버스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단순한 부처 신설을 넘어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는 확장성과 현실감을 갖는 ‘메타버스 정부’ 구축이 필요하다. 5G, 사물인터넷(IoT), XR 등 기술 발전, 3D 활용 서비스 및 콘텐츠 다양화, 디지털 소비층 변화 등 메타버스 정부 기반이 빠르게 성숙돼 메타버스 정부 구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메타버스 정부는 가상화된 공간에서 정부를 운영하고, 공공서비스 전달·이용방식을 혁신해 국민에게 새로운 디지털 정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메타버스 영상회의, 전자문서유통증명(블록체인), 종이 없는 행정업무, 내부 세미나 등 업무 효율성이 확보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접속 환경에서도 동일한 스마트 행정업무 환경 제공이 가능해진다. 향후 메타버스 정부는 ‘메타버스 기반 정부서비스 확대'(1단계), ‘메타버스를 활용한 정부업무 방식 혁신'(2단계), ‘지속가능한 메타버스 정부 인프라 강화'(3단계)라는 세부 추진 전략을 만들어 접근한다면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메타버스 정부 표준 플랫폼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메타버스는 단기간에 구축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실과 가상 융합을 통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정치와 행정에서의 대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교한 미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핵심은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내부에서 현실 세계 콘텐츠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메타버스 특별법’을 제정해서 일상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메타버스 서비스 발굴 등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블록체인을 통한 신뢰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사회 전반에 경계 파괴와 융합을 핵심으로 하는 ‘빅 블러'(Big Blur)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또 4차 산업혁명 경쟁우위를 위해 New ICT의 인재, 기술, 인프라, 서비스, 제도 등 정책수단이 종합·집중돼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국제미래학회 미래정치위원장
<필자 소개>
김형준 교수는 대표 정치평론가이며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학회 고문과 한선재단 정치개혁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정책자문위원, 한국선거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