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지율 하락과 ‘이준석 사태’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호기(好機)를 맞은 더불어민주당도 박스권에 지지율이 갇히면서 일부 조사에선 국민의힘에 뒤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20~30%대로 하락하는 침체기에는 제1야당이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여권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야당도 지지율이 오르지 못하는 건 매우 특이한 상황”이라고 했다. 정당 지지율은 자력(自力)보다는 상대방의 헛발질로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엔 여권에서 돌아선 민심이 야당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조사회사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 National Barometer Survey)의 9월 넷째 주 조사(9월 19~21일 전국 1000명)에서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29%)이 국민의힘(34%)보다 낮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32%)보다도 낮았다. 한길리서치가 9월 17~19일 실시한 전국 1000명 대상 조사도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7.6%, 민주당 31.2%였다. 이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윤 대통령(37.8%)보다 낮았다. 9월 20~22일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전국 1000명)에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4%로 동률이었다.
‘이재명 역컨벤션 효과’
민주당의 부진은 기존 지지층의 이탈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NBS 조사에서 최근 민주당 지지율(29%)은 대선이 치러지던 지난 3월 초의 35%에 비해 떨어졌다. 갤럽 조사에서도 같은 기간에 38%에서 34%로 하락했다. 대선 때와 비교하면 민주당 지지율은 연령별로 40대, 이념성향별로 진보층에서 하락폭이 컸다. 갤럽의 3월 초 조사와 9월 말 조사를 비교하면 민주당 지지율은 40대에선 57%에서 47%, 진보층에선 72%에서 62%로 하락했다. 민주당이 지지 기반을 확장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기존 지지층에서도 기반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선 ‘이재명 역(逆)컨벤션 효과’란 분석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끝나면 정당 지지율이 오르는 ‘컨벤션(전당대회) 효과’를 누리지만 지난 8월 말 이 대표가 선출된 이후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역컨벤션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8월 초에 39%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 대표가 선출되고 한 달가량이 지난 최근엔 34%에 머무르고 있다. NBS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8월 초 33%에서 최근 29%로 하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실화하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팬덤 정치 강화 등에 야권의 온건한 지지층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중도 확장성이 없는 이 대표로는 다음 대선도 힘들 것이란 불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전 갤럽 조사에서 전체 국민의 이 대표에 대한 호감도는 34%로 작년 3월의 46%에 비해 떨어졌는데, 진보층에서도 68%에서 63%로 하락했다. ‘비호감 대선’의 한 축이었던 이 대표에 대한 인식이 대선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다. 중도층에서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53%)이 호감(35%)보다 크게 높은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최근 ‘민생 우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밀어붙이고 있는 주요 입법 과제의 실제 내용은 ‘퍼주기 포퓰리즘’이 많은 게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민주당이 핵심 입법 과제로 꼽고 있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국민 세금으로 과잉 쌀 생산을 영구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노동조합이 불법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사용자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알앤써치 조사에선 반대(46.6%)가 찬성(37.7%)보다 높았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도 찬성(34.9%)보다 반대(48.1%)다 높았다. 종합부동산세 완화도 한국갤럽 조사에서 찬성(64%)이 반대(27%)를 크게 앞섰지만 민주당은 종부세 완화를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발 가짜뉴스 논란도 감점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특검과 윤 대통령 순방외교와 관련해 박진 외무부 장관 해임 건의안 등을 당론으로 정하고 초강경 대여(對與)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도 ‘국정 발목 잡는 야당’이란 부정적 인식이 커질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역대 정권에서도 야당은 정부·여당을 향한 강력한 투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했지만 총선 등에선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전례가 많다. 최근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이 주장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악수 연출설’, 서영교 최고위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주장했던 ‘군 팬티 예산 삭감설’ 등 야당발(發) 가짜뉴스 논란이 적지 않은 것도 민주당으로선 감점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지난 대선 때 그가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상대 후보가 싫어서 마지못해 찍었던 지지층이 대부분 이탈했다”며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도 대선 때 이 대표가 좋아서 찍었던 강경 지지층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 결과 여(與)도 야(野)도 마음에 안 들어서 양쪽 모두에게 등을 돌린 무당층(無黨層)이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에선 최근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4개 조사회사의 NBS 조사에서 지난 1월 초엔 무당층이 25%였고 대선 직전인 3월 초에는 18%로 줄었지만 최근 조사에선 30%로 크게 늘었다. 갤럽 조사에서도 무당층이 1월 초 24%에서 3월 초 14%로 줄었다가 최근 27%로 급증했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정부와 여당이 지지부진해도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외연적 확장 없이 소수의 전통적 지지층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지난 대선의 패배를 반성하고 포퓰리즘이 아닌 실질적 민생에 올인하는 정당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탈했던 집토끼가 조만간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지만 야당 역시 경제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많은 국민의 인식“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여권과 협치하고 정책적 대안으로 경쟁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지율 상승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기사에 인용된 자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