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는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 문장이 핵심이다. 나머지는 이 문장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증례이고, 부분적으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아부가 전부다.
가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마키아벨리스트’라 칭한다. 충분히 근거가 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은 양의 얼굴과 사자의 포악함을 국가 번영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위한 일에 썼다. 마키아벨리식 통치로 얻은 지지율로 정작 해야할 개혁은 하지 않고 이념 실현에 용썼다.
군주의 통치 기술을 서술한 ‘군주론’이 민주적 통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인간의 본성과 권력과 통치의 본질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형태와 통치의 모양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본성과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는 게 이 지점이다. 대통령은 대표정치인이고 통치는 고도의 정치 행위다. 그저 진정성만 보여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이해가 다르고 정치적 반대세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진심이 통할 거라 기대하는 건 정말 정치신인의 순진한 생각이다.
‘여의도식 정치‘를 배척한 대통령은 어김없이 실패한다. 포퓰리즘을 하라는 게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선을 지키는 한도에서 그것마저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좋은 정책‘은 없다. 국가정책은 누군가는 피해를 입기에 이견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정치를 잘해야 정책도 소용이 있다. 통치를 잘하려면 정치를 잘 해야 된다.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함을 잘 운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귀와 가슴을 열어야 된다. 정치적이 되라는 게 아니라 통치를 잘하기 위해 정치를 잘 해야 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