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국민연금은 노후 생활의 안전판이다. 은퇴해 노동소득이 없어질 때 최소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자산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여 이제 전 세계 연기금 중에서도 세 번째로 큰 규모이지만 이대로 가면 2057년 부근에서 고갈된다. 국민의 은퇴 후 기본적인 경제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35년도 남지 않았다. 돈의 원리로만 본다면 20대 대학생들에게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고 그 돈으로 다른 자산에 투자하여 노후를 대비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젊은이들은 국민연금을 더 납부하도록 하고 노령자들은 국민연금을 덜 수령하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다. 국민연금 보험료율(국민연금을 내는 것)과 소득대체율(국민연금을 받는 것)을 조정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다. 이전 정부들이 무책임하게 국민연금의 개혁을 미뤄온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예는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플레이션 계산법’인데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의 인플레이션 계산법은 실제 물가를 약간 과장하여 측정하는 면이 있다. 이를 고치면 인플레이션율은 약간 낮아지는데 이렇게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은퇴자들의 연금 인상 등 수많은 공공성 지불이 인플레이션에 자동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고친다면 그 후폭풍으로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국민연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국민연금의 규모와 고갈 연도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정말로 많다. 중요한 것 몇 가지만 골라 봐도 연금 가입자 수, 출산율, 기대수명, 경제성장률, 금리, 연금운용수익률, 연금 보험료율, 그리고 소득대체율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얼핏 보아도 당장 바꾸기가 불가능하다. 출산율을 갑자기 바꾸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연금 보험료율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현재 9%인 연금 보험료율을 높인다면 국민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바꿀 수 있는 희망의 변수가 있으니 그것은 ‘연금운용수익률’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자산을 잘 운용하여 수익률이 높아지면 연금 고갈 시기를 뒤로 미룰 수가 있는 것이다. 2018년 정부의 4차 국민연금 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7년에 고갈되는데 이 전망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4.6%로 가정하였다. 4차 국민연금 전망의 자료를 그대로 이용하여 다른 조건은 그대로인 채 국민연금 수익률만 6%로 올려 국민연금 고갈 연도를 아래 그래프에 비교해 보았다. 참고로 6% 수익률은 전 세계 상위권 연기금의 장기 연평균 수익률이다. 이렇게 국민연금 수익률을 6%로 상승시키면 국민연금 고갈 연도는 2068년으로 미루어진다. 지금보다 연금 고갈 연도를 무려 11년 미룰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11년 고갈 연도가 미루어지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고갈 연도를 미루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지금 정부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을 수립하더라도 그 선택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부 당국자가 국민연금 개혁에는 1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중요한 지적이다. 만약 이번 정부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2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노령화, 인구 감소, 출산율 저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게 하는 수익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10% 이상 유지된다면 가능하다. 실로 ‘국민연금 고갈을 방탄해주는 수익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미국 예일대 기금의 2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3% 정도이고 한국투자공사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도 10%에 육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모진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임기 내에 국민연금의 개혁안을 안착시킨다면 역사책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세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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