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문 닫고 취업 제한도
인도적 지원 없인 생활고 심각
내전 끝났지만 치안 불안 여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지 15일(현지시간)로 1년을 맞는다. 1년 사이에 여학교는 문을 닫았고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얼굴도 가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음악과 드라마는 금지되고 권선징악부와 도덕경찰이 부활했다. 국민 70%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는 등 경제는 파탄이 났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에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몰려들어 글로벌 테러리즘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 여성부터 지운 탈레반
탈레반은 재집권 후 가혹한 통치 방식으로 반발을 샀던 1996~2001년 집권기와는 다른 통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집권하자마자 장관부터 사무직까지 여성 공무원들이 일제 해고됐다. 여성 취업은 학교, 병원 등 일부 기관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권선징악부가 부활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에 따른 각종 제한 조치들이 법제화됐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지난 5월 TV 앵커를 포함해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부르카로 가려야 한다고 명령했다. 여성은 남성 가족이나 친척이 동반하지 않으면 72km 이상의 장거리 여행이 금지됐다.
한국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7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여학생 교육은 사실상 금지됐다. 탈레반은 적절한 복장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3월 여학교 개학을 무기한 연기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미래를 빼앗겼다’는 절망에 빠져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는 여성들의 시위가 열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성 약 40명이 이날 ‘8월15일 블랙데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빵, 노동, 자유” “정의, 우리는 무지에 지쳤다”고 외치며 교육부 건물까지 행진했다. 탈레반 무장대원들은 허공에 위협 사격을 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구타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집권기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적이지 않은 것’들은 모두 퇴출됐다. 대중문화는 물론 민요 등 전통 문화까지 반이슬람적인 것으로 여겨져 금지됐다.
■ 인구 70%가 빈곤선 이하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는 1년 사이 크게 파탄이 났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국제제재로 80억 달러의 자금이 동결됐으며, 이는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미국평화연구소 아프간 수석전문가 윌리엄 버드는 “아프간 경제는 1년 사이 20~30% 후퇴해 최근 더 하락하는 것은 멈췄지만 인구 대부분이 식량과 기타 필수품을 살 여유가 없으며, 인도적 지원이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유엔개발계획은 현재 아프간 인구의 72%가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는 이 수치가 97%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극단주의 세력 요람되나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집권했을 때 일부 주민들은 20년 동안 이어진 내전의 종식을 환영했다. 하지만 아프간 전체적으로 보면 치안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IS-K는 지난 3~4월 라마단 기간 아프간 북부의 시아파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연쇄 폭탄테러를 일으켜 1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최근 카불에서는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사살됐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테러조직 수장을 숨겨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레반의 국제사회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특히 탈레반 재집권에 고무된 극단주의 세력이 아프간으로 몰려들어 아프간이 테러조직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