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뒤통수 맞은 정부… 외교 부실 대응 논란
‘야스쿠니 참배’ 인사에 우리측 불참
유가족 등 오늘 현지서 별도 추도식
이미지 확대
日 반쪽 애도, 韓 텅 빈 자리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이쿠이나 아키코 일본 외무성 정무관 등 일본 측 참석자들이 추모 묵념을 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 관계자와 유족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일본 측은 ‘인사말’로 명명한 추도사에서 애도의 뜻은 밝혔으나 ‘강제징용’ 언급을 피하는 등 ‘반쪽짜리’ 추도식을 치렀다.
AP 연합뉴스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일 정부가 합의한 추도식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까지 계속해서 한발씩 양보하며 일본의 진정성과 성의를 기대했지만 일본이 부응하지 않으면서 ‘외교 실패’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근 훈풍이 불었던 한일 관계가 다시 삐걱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했다. 한국 정부 대표와 피해자 유가족들은 불참했다. 외교부는 전날 오후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을 결정했다.
전날 사도섬으로 떠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9명은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박철희 주일대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별도 추도 행사를 갖는다. 유족들은 70대 안팎의 고령으로 당초 11명이 참석하려다 건강상의 이유로 2명은 출국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추도식을 ‘보이콧’한 결정적 계기는 추도식 이틀 전 일본 정부 대표로 발표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극우 주장도 펼친 바 있다.
외교부의 부실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외교부는 일본 측에 일관되게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가 추도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하기로 하자 공개적으로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밝혀지자 추도식 불참을 전격 결정했다.
사도광산을 둘러싼 양국 간 불협화음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노동자 추도식과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전시물 설치를 일본 측과 합의했다. 2015년 하시마(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한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던 정부는 이번 협상이 ‘상당한 성과’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원래 7~8월쯤으로 약속한 추도식은 계속 미뤄졌고, 11월에서야 개최가 확정된 추도식의 명칭은 추모 객체가 불분명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다. 유가족 참석 경비도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으로 급속도로 풀린 한일 관계는 한미일 협력으로 이어져 윤석열 정부의 핵심 외교 성과로 꼽혔다.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더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에 이번 추도식 파문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방송 인터뷰에서 “단일성인 어떤 문제 때문에 전반적인 양국 관계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실망스럽고, 아직도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라며 “한국 정부 등도 일본의 진정성을 얻어내기 위해 충분히 설명하고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2024-11-25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