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충청 폭우 피해 속출
당진천 범람 인근 탑동초 등 침수
서울·경기 주요 도로·철도도 통제
흙탕물 운동장 넘어 교실까지… 서울 도림천 등 홍수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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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가 잠겼어요”
18일 0시부터 오전 11시까지 162.5㎜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충남 당진시 채운동 일대 도로가 물바다로 변해 있다. 당진시는 수위가 올라간 하천 인근 주민에게 대피 안내문자를 발송했는데 당진천 등이 범람하면서 피해가 잇따랐다. 호우 경보는 이날 오전 5시 30분에 발효됐다 오후 3시 20분 해제됐다.
당진 연합뉴스
“자식 같은 소들을 놔두고 어떻게 혼자 대피할 수 있겠어요. 제 안전도 중요하지만 소들도 지켜야 하니 어떻게든 물길을 막아보려고요.”
18일 오후 충남 당진시 신평면 신송2리 일대. 이날 오전에만 162.5㎜가 쏟아지는 등 역대급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이곳은 ‘물바다’가 돼 있었다. 대부분의 논밭은 ‘호수’로 변했고 도로들 태반은 ‘출입금지’ 푯말이나 관공서 차량으로 통제된 상태였다. 마을 옆 남원천엔 붉은 황톳물이 당장이라도 마을을 덮칠 기새로 세차게 넘실대고 있었다.
당진시는 이날 오전 재난 문자를 통해 ‘남원천 제방 붕괴 우려가 있다’며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 수십 명은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하지만 60대 주민 A씨는 축사에서 버틴 채 홀로 폭우와 싸우고 있었다. 축사 앞 도로는 이미 물에 잠긴 상태였다. 농장 주변으로 물이 불어나자, 소들도 많이 놀란 듯 연신 ‘음매’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A씨는 “30여 마리 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폭우에 소들이 놀랄까 걱정이다. 그나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B씨는 “육십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다. 제방이 버티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더 많은 비가 내려 제방이 무너지면 시내까지 약 2㎞ 이상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완식(당진2) 충남도의회 의원은 “곳곳에서 물이 흘러 논들이 대부분 물에 잠겼다. 아직 인명 피해는 없지만 호우에 대처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3일째 계속된 폭우로 서울과 수도권, 충남 지역에 본격적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날 충남 서해안, 경기 남부 곳곳에서 하천이 범람하고 둑이 터져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주민 대피명령이 잇따랐다. 수도권 주요 도로와 철도도 물에 잠겨 한때 통행이 중단되며 시민 불편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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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뚫고… 고립된 시민 구조
18일 오전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침수된 공장에 고립된 근로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당진시 당진천이 범람하면서 황톳물이 인근 탑동초와 당진정보고를 덮쳤다. 흙탕물은 운동장을 채우고 복도와 교실에까지 들이쳤다. 폭우를 뚫고 등교했던 두 학교 학생 1900여명은 한때 교내에 고립되기도 했다. 당진정보고 교문은 반쯤 물에 잠겼다.
이 학교 재학생 임모(17)양은 “등굣길이 전쟁 같았다. 학교에 오고 30분 뒤에 물이 엄청나게 차오르고 선생님들이 절대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충남 아산시도 이날 낮 재난 문자를 통해 “인주면 문방저수지 하부 배수로 둑이 터져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수도권도 홍수 위험에 빠졌다. 경기 오산시 오산천 탑동대교 수위는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대홍수경보 기준수위인 4.20m를 넘어 4.96m까지 올랐다. 오산동 경부선 철도 지하도로는 아예 물에 잠겼다. 산책로도 완전히 침수됐다.
오산시는 오전 9시 20분 오산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발령했다. 궐동 주민은 매홀초교로, 오색시장 일대 주민은 오산고로 대피하고 차량을 이동하라고 안내했다. 주민 김모(91) 씨는 “오늘 새벽처럼 비가 또 온다면 이 주변은 완전히 침수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한 도로에서는 오전 4시 49분쯤 차량 4대가 한꺼번에 고인 물에 고립됐다. 북부특수대응단이 긴급 출동해 보트를 타고 1시간 20여분을 수색한 끝에 50대 여성 2명을 구조하기도 했다. 산사태로 토사가 민가를 덮치고, 침수로 고립된 주택에서 80대 노인이 구조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경기 양주시 백석읍에서는 오전 2시 25분쯤 “산사태가 나서 공사장 블록이 집을 덮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112신고가 접수돼 긴급출동한 경찰이 일가족 4명을 대피시켰다. 용인 공세동에서도 주택 침수로 갇혀 있던 주민 1명이 구조됐다.
기상청은 이날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충청권에 시간당 30㎜ 내외의 ‘물폭탄’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3시부터 이날 오후 2시까지 주요 지역 강우량은 ▲파주시 374.6㎜ ▲인천 강화군 367.2㎜ ▲경기 연천군 군남면 300.5㎜ 등이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7시 20분을 기해 서울 전역에 내려졌던 호우주의보를 호우경보로 격상했다. 산림청은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강북구·종로구·서대문구 등 3개 자치구에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서울 도림천·목감천, 경기 고양 공릉천, 파주 임진강·한탄강·포천천·차탄천·조종천에는 홍수주의보가, 동두천 신천·파주 문산천에는 홍수경보가 내려졌다.
오전 10시 기준 경기와 인천 유·초·중·고 32곳은 등교 시간을 조정하거나 단축수업을 결정했다. 경기도는 초교 1곳이 휴업했고 9개 학교는 단축수업을 했다. 학교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30곳은 시설 피해를 봤다.
이날 오전 동부간선도로 성수분기점~수락지하차도 구간, 내부순환로 마장램프~성동분기점 구간이 전면 통제됐고 쏟아지는 비로 출근길 도심 곳곳에서 정체가 빚어졌다.
집중호우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던 시민들도 불편을 겪었다. 종로구의 한 버스정류장에는 ‘곧 도착’이라는 전광판 도착 정보와 달리 버스가 10분 넘도록 오지 않기도 했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우산이 있어도 별 쓸모가 없었다. 결국 옷이 다 젖은 채로 출근했다”며 “출근길이 평소보다 길어져 지각하는 직원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지하철은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렸다. 용산역 인근에서 만난 김선화(38)씨는 “그나마 회사가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다행”이라면서 “비가 계속 온다는데 금요일 출근길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와 철도 운행도 침수로 인해 한때 중단됐다. 서해안고속도로 송악나들목(IC) 서울방향 통행은 이날 오전 10시쯤 폭우로 인한 물고임으로 1시간 33분간 통제됐다. 지하철 1호선 양주 덕정역∼연천역 구간과 경의·중앙선 파주 문산역~도라산역 구간은 첫차부터 운행이 중단됐다. 경부선 세마역∼평택지제역 상·하행선 일반 열차와 전동차, 일부 KTX도 운행을 멈췄다.
자동차 침수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이날까지 12개 손해보험사가 집계한 집중호우 차량 피해는 2468건으로 손해액은 약 223억 500만원에 달한다.
이종익·김민석·한상봉·김중래·김지예 기자
2024-07-19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