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2심 선고’ 피해자 조순미씨
옥시·애경 등 5년 사용하다 폐렴
6년간 산소 줄 착용하면서 생활
檢, 과학적 증거 100개 추가 제출
화합물·폐 질환 연관성 입증 주력
“가습기살균제로 몸과 가정이 망가졌습니다. 빼앗긴 시간은 돌려받을 수 없는데 아직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조순미(54)씨는 제조·판매업체에 대한 2심 선고를 한 달여 앞둔 지난 8일 “이제는 사과받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달 11일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 애경산업의 안용찬 전 대표 등에 대한 2심 선고가 나온다. 2021년 1월 12일 무죄 판결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가운데 가장 많은 피해를 낳은 옥시레킷벤키저뿐만 아니라 2심 판결을 앞둔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의 제품을 2007년부터 5년여 동안 사용했다. 이후 마흔 살이 된 2009년부터 어렸을 때도 한번 걸리지 않은 폐렴에 1년에 8~9번씩 걸리기 시작했다. 2011년 영유아와 임산부 수십명이 원인 불명의 폐 질환으로 숨지고 정부가 대규모 조사에 나선 뒤에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몸은 폐허가 된 상태였다. 2017년부터는 산소 줄을 착용하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몸이 됐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참사’로 불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주된 이유는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폐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검찰은 이번 항소심에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12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검찰은 재판부에 총 100개의 증거와 23개의 참고 자료를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증거기록만 총 3753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의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결합한 화합물이 실험용 쥐의 호흡기관을 거쳐 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북대 산학협력단 연구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20년 CMIT, MIT의 인체 위해성을 평가하는 방법 등을 담아 발표한 보고서도 포함됐다.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관련자들에게 1심 형량과 같은 금고 5년 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남성욱 변호사는 “2심 판결에서도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고인 측 변호인은 검찰에서 제시한 연구논문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종합포털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 수는 지난해 11월 31일 기준 7877명(생존 6042명·사망 1835명)에 달한다.
글·사진 송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