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마약+피싱 범죄’ 확인
中보이스피싱 조직, 반년간 준비
필로폰 0.1g씩 음료 100병 만들어
경찰, 구속된 3명 외 배후 추적도
불특정 고교생을 상대로 한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은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이 반년 전부터 범행을 구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 이처럼 마약과 보이스피싱을 결합한 유형의 범죄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안동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장은 17일 “한국 국적인 이모(25)씨가 중국에 건너간 지난해 10월부터 범행 모의, 계획이 시작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마약 중독자를 늘리기보다 신종 수법으로 범죄 수익을 늘리려는 의도라는 게 경찰 판단이다.
경찰은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책’인 이씨가 범행 전반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씨는 주변 지인과 가족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할 계획을 알린 뒤 지난해 10월 17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이씨는 중학교 동창인 길모(25·구속)씨에게 마약 음료를 제조하라고 지시했다.
필로폰 약 10g을 구매한 길씨는 한 병당 필로폰 0.1g이 들어간 마약 음료 100병을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통상 한 번에 투약하는 0.03g의 3.31배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투약 경험이 없는 미성년자가 급성 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는 양”이라면서 “급성 중독은 정신착란이나 기억력 상실, 심각한 신체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길씨는 마약 음료를 제조한 뒤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통해 지난 3일 서울로 보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모집된 아르바이트생 4명은 수당 15만~18만원을 받고 ‘대치동 학원가’에 배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찰은 중국에 있는 기존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번 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판단하고 범행을 꾸민 콜센터와 합숙소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또 길씨와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전달한 박모(35·구속)씨의 배후에는 또 다른 마약 공급책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길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과 범죄단체 가입·활동, 특수상해 및 미수, 공갈미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서울경찰청은 다음달 말까지 ‘청소년 마약 관련 첩보 집중 수집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김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