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수색·복구 작업
타이루거공원 1000여명 고립
“앞으로 2∼3일 여진 이어질 것”
당시 대응 실패로 정권도 내줘
내진 설계·재난 대비 능력 키워
TSMC “핵심설비 안전… 70%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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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는 건물 잔해
대만 동부 화롄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4일 한 작업자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철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999년 규모 7.6의 강진으로 2415명이 사망한 ‘9·21 대지진’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지금까지 9명이 사망하고 1011명이 다쳤다. 유명 관광지인 타이루거 국가공원에 1000명 넘게 고립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화롄 EPA 연합뉴스
대만 동부 해역에서 규모 7.2(미국·유럽 지진당국 기준 7.4) 강진이 발생한 지 이틀째인 4일 구조 당국은 국가공원과 광산 등 산속에 고립된 1000여명을 구조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 갔다. 수색·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원자폭탄 32개의 파괴력을 가진 강진에도 인명 피해가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는 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대만 정부가 1999년 대지진의 뼈아픈 경험을 거울 삼아 내진 설계 및 재난 대응 능력을 키운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4일 대만 중앙재해대응센터는 이번 지진으로 전날 오후 10시 기준 사망자 9명, 부상자 1011명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진앙에서 25㎞ 떨어진 동부 관광도시 화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타이루거 국가공원 4명, 다칭수이 터널 2명 등 사망자 전원이 이 지역에서 나왔다. 타이루거공원에는 빠져나오지 못한 인원이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롄 인근 광산 지역에 87명이 갇혀 있고, 출근길 통근 버스를 타고 가던 호텔 직원 47명도 길이 막혀 발이 묶였다. 중앙기상서는 “앞으로 2~3일가량 여진이 이어진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번 지진은 1999년 규모 7.6의 강진으로 2415명이 사망하고 10만명 넘게 다친 ‘9·21 대지진’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대만 섬 내부에서 발생한 당시 지진과 바다가 진앙인 이번 지진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외신들은 피해 상황을 비교하면서 주목하고 있다.
AP통신은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수시로 지진이 발생하는 대만이 1999년 지진으로 큰 교훈을 얻은 뒤 ‘사회 대개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9·21 대지진 당시 응급의료팀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고, 정부 기관 간 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을 보여 준 집권 중국국민당은 이듬해 3월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만년 야당’인 민주진보당에 정권을 내줬다.
이후 대만 정부는 재해 대비 관련 법률을 대거 통과시켰고 주택과 건물, 공장 등에 내진 설계 기준도 지속적으로 높였다. 작업장마다 지진 대응 매뉴얼을 도입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도 주력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수도 타이베이는 이번 지진으로 강한 타격을 받았지만 큰 피해가 없었다. 미국 미주리 과학기술대 지진학자 스티븐 가오는 AP에 “21세기 이후 대만은 엄격한 건축 법규를 유지하고 광범위한 지진 교육 캠페인을 시행했다”면서 “덕분에 대만의 지진 대비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든 정보기술(IT) 역량이 전 사회로 퍼지면서 이번 지진 대응에 도움을 줬다”고 분석했다.
우이민 국립대만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최근 3~5년 사이에 대만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졌다”면서 “피해 지역 이동 신호를 감지해 사람들의 흐름을 추적하고 대만 전역 감시 카메라에서 정보를 수집해 피해 규모를 계산하는 능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TSMC는 전날 성명을 내고 “일부 생산라인에서 반도체 설비가 손상됐지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핵심 설비는 안전하다”면서 “지진 발생 10시간 만에 공장 설비의 70% 이상을 복구했다. 완전한 복구를 위해 가용 자원을 모두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2024-04-05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