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고대 신화 및 중세 시대 서사, 주된 모티브로
유럽·미국 대중문화계 이교주의 매혹적으로 현대화
기독교 문화요소 배제 이교주의 대서사극 전성시대
종교다원주의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 득세도 역할
◈판타지 대중문화와 유럽 이교주의: 켈트, 게르만 이교주의를 전수하는 판타지 대중문화
전 세계 대중문화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두 편의 판타지 대서사극, <왕좌의 게임>(2011-2019)과 <반지의 제왕>(2001-2003) 시리즈 프리퀄이 두 주간 터울을 두고 거의 같은 시기에 방영되면서, 흥행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8월 21일에는 <왕좌의 게임>의 200년 전 이야기를 전하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공개되었고, 9월 1일에는 <반지의 제왕>의 5,000년 전 이야기, <실마릴리온> 시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가 공개되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총 10편의 에피소드,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총 8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될 예정이다.
두 작품 모두 방대한 스케일의 신화와 역사를 서사의 주된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물론 두 작품이 다루는 신화, 혹은 역사의 내용 사이에는 구체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1066년부터 1135년까지 영국을 다스린 노르만 왕조의 역사를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고대 북유럽 게르만(특히 앵글로 색슨) 신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영국의 전설, 신화, 역사, 그리고 문학은 전 세계 대중문화계에 어필하는 힘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영제국 시절 전 세계 식민지에 산재하고 있던 고급 문화유산을 적극 강탈하고 수용하는 동시에, 자국 문화와 언어를 세계화하려고 노력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인들이 영국 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동경심 또한 영국 문화가 세계 대중문화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할 수 있다.
이렇게 북유럽 고대 신화시대와 중세시대 서사를 주된 모티브로 삼는 영화나 드라마는 유럽에 오래 뿌리내리고 있던 이교주의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 기독교 전파가 먼저 시작되었던 지중해 지역과 지리적으로 먼 다뉴브 강 이북과 북부 프랑스, 브리튼과 아일랜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중세 후반까지도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이교주의 문화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는 유럽의 중세 및 근대 초기 문학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아더 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켈트족 드루이드 멀린이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들, 그리고 <니벨룽의 노래>에 등장하는 발퀴레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교적 요소들은 중세 가톨릭의 토착화를 초래하면서 기독교 문화와 기묘한 공존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유럽의 이교주의 및 주술문화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결코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것들이 유럽의 전설이나 민담 등 구전 문화유산과 서사시 등 기록 문화유산의 내용과 색채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고 보다 강력한 매력을 부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프리퀄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
◈판타지 대중문화와 기독교: 기독교 문화요소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판타지 대서사극
이러한 이유로 근현대 유럽과 미국 대중문화계는 기독교 문화를 주된 근간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교주의 요소의 보존과 개발, 활용에 힘쓰고 있다. 이교주의 종교문화를 원래 모습보다 더 매혹적인 모양새로 현대화시켜 문화전파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와 웬디>, J. R. R. 톨킨의 <호빗>과 <반지의 제왕>, 그리고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 가운데서 특히 톨킨의 작품은 오늘날 판타지 장르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하고 있다.
그렇다 한들 1970년대까지 대중문화계에서 이교주의 문화요소는 실제 중세 문화유산에서 살필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요소와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80년대 중반, 리들리 스콧의 <레전드>(1985), 조지 루카스와 론 하워드의 <윌로우>(1988), 그리고 결정적으로 짐 헨슨의 <라비린스>(1986)와 TV 시리즈인 <스토리텔러>(1988-1989)가 연달아 제작되면서부터였다.
이 작품들은 2000년대의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큼의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훗날 신화와 대서사시를 근간으로 삼는 판타지 서사 대중화의 기반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이 1980년대 판타지 작품들이 감독이나 제작자의 성향 때문에 기독교 문화요소를 완벽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고대와 중세 유럽의 이교주의 문화요소만 미화하고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조지 루카스와 론 하워드의 <윌로우>. |
리들리 스콧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앞장서서 반종교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이고, 조지 루카스는 히피 문화와 불교에 심취했던 전력이 있으며, 현대 인형극과 판타지 영상화의 대가 짐 헨슨은 한때 신흥종교 크리스천 사이언스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일종의 현대화된 영지주의 이단으로서, 인간의 과학지식이 극단에까지 이르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요소와 친숙하지 않거나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1980년대 중후반 판타지 대중문화의 초석을 놓았고, 이는 1990년대 CG 기술의 급격한 발전,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해리포터>라는 초대형 흥행작을 발표한 J. K. 롤링의 등장에 힘입어 오늘날 이교주의 판타지 대중문화 장르의 대대적인 흥행과 성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판타지 서사가 기독교 문화요소와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게 된 데는 특정 종교의 믿음이나 가르침에 연연하지 않고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정치적 올바름(PC) 이념의 득세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정치적 올바름 이념은 사실 종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혀 공정하지 않고, 기독교 편에 유독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인다. 불교나 이교주의, 토착신앙, 이슬람 등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기독교 신앙이나 문화요소에 대해 언급하거나 소개하기를 거부한다.
이런 정치적 올바름 이념이 대중문화계의 주된 정서를 이루면서, 원래 판타지 장르에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던 기독교 문화요소는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의 한 장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원래 톨킨이 기독교적 인간이해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집필한 작품이지만, 새롭게 영상화된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런 의도를 배제한 채 유럽의 이교주의 문화요소를 미화하는 데 주력한다. |
이런 분위기는 이번에 공개된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톨킨이 기독교적 인간이해를 표방하려는 의도에 의해 집필한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에 기독교적 요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기독교적 문화 요소를 찾으려면 작품의 메시지를 살펴야 하는데,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의 영상과 메시지는 톨킨이 원래 의도했던 기독교적 인간이해는 거의 드러내지 않고 게르만 신화 요소와 정치적 올바름 이념의 메시지 전달에만 주력하고 있다.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기독교가 지배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던 영국의 노르만 왕조와 장미전쟁 시대를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현실과 완벽하게 괴리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려는 의도 때문인지 이교주의 요소를 발전시키고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작중 조로아스터교를 모방한 를로 종교, 그리스 신화와 게르만 신화를 모방한 7신교, 고대 켈트족 종교를 모방한 고대신 종교가 등장한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요소가 전적으로 배제된 채 유럽의 이교주의 주술문화를 미화하는 행태는 향후 제작되는 거의 모든 판타지 대중문화 작품에서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 2022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