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9월 1일 발행한 <황해문화> 2022년 가을호(통권 116호)는 현재 한국 정치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특집을 기획한 이광일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위기의 긴장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며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보수-수구 독점의 정당체제’가 ‘진보-보수 독점의 정당체제’로 재생산되면서 그들이 잘못해도 집권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이 한국전쟁 이후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살아온, 지금의 민주당이 사는 방식이다. 바로 정치적 무임승차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늪에 빠진 한국 정치를 구하기 위한 민주적 정치 개혁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기획취지를 밝혔다.
민주당, 팬덤 현상 등 고려하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이번 가을호 특집 제목은 ‘늪에 빠진 한국 정치에 관한 다섯개의 질문’이다.
특집 총론을 쓴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민주당은 왜 그럴까: 그들이 촛불을 배신한 이유’에서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이 지향한 것은 기존 정치 질서를 전복하는 데 있지 않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자유주의 질서 회복에 있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촛불봉기 과정에서 제출된 요구들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관련 공약 실천을 회피하고 정치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배신의 정치 행태’를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이런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당과 하위 파트너 관계로 연결된 시민사회, 그 영향력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존재, 비판적 성찰의 부재를 핵심으로 하는 팬덤 현상 등을 고려할 때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진단을 내린다.
민주당 지지 청년 여성의 개혁 요구, 성과내기 어려워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계열 정당과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적 대표’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재(13~21대 국회)까지 성별·연령·학력·출신지 등을 준거로 민주당 초선 의원의 정치적 대표성을 살펴본다.
강우진 교수는 민주당의 영입 전략이 ‘보수적인 국민의힘’ 계열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한다.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원은 ‘청년 여성, 새로운 정치 주체로서 민주당 개혁의 추동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청년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 주체로 ‘민주당’ 개혁 추동자가 될 수 있는가”를 심문받을 이유도, 그것이 꼭 민주당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페미니스트 정치를 고민하는 청년 여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대 양당에 소속돼 페미니즘 정치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임을 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때 촉망받던 신지예, 박지현 두 청년 여성의 등장과 몰락한 사례를 떠올리게 만든다.
김은희 연구원은 확대·심화하는 계급 문제와 계급 문제에 포함하지 않는 불평등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시대 과제’인 세대 간 갈등과 젠더 이슈는 간과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은희 연구원은 민주당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청년 여성들의 개혁 요구가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민주적 정치제도 위해 민주당, 군소정당·시민사회와 협력해야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진보정치 아포리아,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정의당이 지난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거치며 진보정당으로써 최소환의 위상과 영향력을 잃어버리며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에 직면한 원인을 분석한다.
나경채 전 대표는 정의당이 애초 진보정치가 생겨난 곳,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수구 정치세력이 합의한 ‘87년 체제’에 동의하지 않았고, 배제됐던 ‘노동운동 세력과 저항하는 사회운동 세력’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근본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면서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애초 존립 근거로 돌아가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구체적으로 진보 지지층을 모으고 진보 정치세력의 구심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 ‘원내 중심의 명사정당’에서 ‘사회운동 대중정당’으로 거듭나야한다고 강하게 주문한다.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늪에 빠진 한국 정치 구하기, 민주적 정치 개혁은 가능한가?’에서 국회 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과 논의 내용을 검토하며 질문에 답한다.
그는 정개특위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졌음에도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은 여야 동수 구성과 합의주의, 형식적 공청회, 시민사회 배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지배적인 두 정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 활동이 좌우되기 때문임을 환기시킨다.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만들기 위해선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를 독점하지 말아야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대신 시민사회와 공감대, 숙의가 이뤄질 수 있게 (가칭)정치개혁법 시민논의기구를 설치하고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이 군소정당, 시민사회와 소통·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정치 부재 한국 정치에 대안 제시하는 문화비평 담아
이번 호 문화비평은 지역정치가 부재한 한국 정치의 대안 등을 다룬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아래로부터 자유로운 결사로 민주적인 지역정치 조직 건설을 위해 기존 정당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또,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왜곡된 정당법의 역사를 살피고 외국 실태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왜곡된 정당법을 바로잡아 지역정당을 실현하기 위해 법제화를 해야한다고 했다.
강주영 동학혁명기념관 부설 동학연구소 소장은 현재 지방자치를 국가의 하도급 자치이자 거대 기업의 가맹점 자치로 규정한다.
아울러 법과 제도를 개혁해 지역정치 활성화 차원을 넘어 주민이 직접 참여·결정·운영하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자치 (연합)조직들로 기본 지방자치를 대체해야한다는 코뮌(프랑스 주민자치제)적 대안을 제시했다.
이번호 비평은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썼다. 김정희원 교수는 젠더폭력이 단지 가해자에게 법·제도적 책임을 물리고 공동체로부터 격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응보정의’, 상처받은 관계를 원래 관계로 회복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회복정의’ 수준에서 다뤄지는 것은 현상 유지에 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폭력과 상처는 그것을 유발한 구조적 토대, 즉 자본주의(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작동하는 가부장체제 등을 극복하기 위한 변혁정의 토대 위에 다뤄질 때 모두가 사는 삶의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이 이번 호 테마 서평을 맡았다. 그는 김희강의 ‘돌봄민주국가’, 조희정의 ‘민주주의는 기술을 선택한다’, 김민하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등 저서 3권이 지니는 의미와 한계를 살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란 문제이자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냈다. 결론은 당면한 여러 문제와 위기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민주주의를 넘기 위해서 가장 평범한 인간조차 자기 목소리를 내고 결정 과정에 함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평범한 인간)이야말로 정치의 주역이라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