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40대 중반의 남자 보(호아킨 피닉스). 낡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집 밖을 나서는 게 무섭기만 하다. 간만에 엄마를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사실 내키지 않는다. 일은 꼬이고 불안감이 점차 극에 달하면서 온갖 두려운 상상이 머릿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5일 개봉한 아리 애스터 감독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가 엄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는 엿새간의 기이한 여정을 그렸다. 두려운 상상들은 현실이 되고, 여기에 과거의 기억들이 마구 엉키기 시작하는 그를 따라간다.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로 전 세계적에서 주목받는 감독이 된 애스터는 귀신이나 괴물을 등장시키는 관행적인 연출 대신 인물의 심리 묘사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게 특기다. 독창적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난해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번 영화는 앞선 영화들에 비해 공포스런 장면이 적고 유머러스한 장면은 더 많다. 그러나 보고 있자면 머리가 아파 온다.
예컨대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싶은데 실제로 비행기를 놓치고, 문을 잠깐 열어 둔 사이 누가 집에 들어오는 상상을 하는데 실제로 주민들이 들어와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든다. 보가 잠시 머무르게 된 어느 가족의 집도 정상이 아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이들도 어딘가 이상하고 불편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나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유는 보의 시선으로 사건을 그려 내기 때문이다. 보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과한 사랑 탓에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다. 관객은 이런 그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여정을 따라가야 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게 보의 환상이고 실제인지 계속해서 혼동스럽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애스터 감독은 이를 가리켜 “제대로 살아 보지 못한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머도 있지만 관객들이 불안과 긴장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의 아픈 과거와 안타까운 현재를 뒤틀어 대는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이지 감탄스럽다.
특히나 ‘조커’(2019)에서 광기 어린 연기를 펼치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호아킨 피닉스가 보를 맡아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다. 피하고 싶은 상황, 과거의 진실 등을 복기하면서 허우적거리는 보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렸다. 그야말로 “스크린을 압도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179분.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