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취임식 직후 급습당해
하마스 “이스라엘 소행” 보복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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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전 ‘승리의 V’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야가 30일(현지시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하니야는 취임식 참석 직후 테헤란에 있는 거주지가 공습을 받아 경호원과 함께 사망했다. 이란을 포함한 중동 무장세력들은 그가 이스라엘에 피살됐다고 규정하고 저항을 예고하면서 중동 전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테헤란 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의 최측근이 시간차를 두고 연이어 사망하면서 중동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고위급을 노린 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을 향해 이란과 무장 세력들은 “악랄한 테러 범죄”라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나서 중동 전역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하마스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61)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몇 시간 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지난 27일 이스라엘 골란고원 지역에서 축구하던 어린이 12명이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으로 사망한 데 대한 보복 조치다.
30일(현지시간) 밤 이뤄진 이 공습으로 헤즈볼라 이인자인 푸아드 슈크르 최고사령관이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밝혔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9개월째 전쟁을 이어 가는 하마스도 “하니야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숙소에 머물다가 31일 새벽 2시쯤 시온주의자(이스라엘)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하마스는 하니야를 순교자로 선언하며 “그의 암살은 처벌받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없는 비겁한 행위”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스라엘군은 그의 죽음과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모두 지원하는 이란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하니야의 피는 헛되지 않는다”며 “하니야의 순교는 이란, 팔레스타인 그리고 저항 세력의 깊고 뗄 수 없는 결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조차도 실용주의자로 평가하는 하니야가 사망하면서 미국과 카타르 등 주변국이 지원하는 가자전쟁 휴전 협상은 큰 장벽을 만나게 됐다.
하니야는 가자전쟁 발발 이후 사망한 최고위급 인사로, 이스라엘로서는 정점을 제거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들을 후원하는 이란을 일컫는 소위 ‘저항의 축’으로선 가장 강력한 항거의 요인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60대 초반으로 알려진 슈크르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슈크르가 이스라엘 마즈달 샴스 지역 축구장에서 12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낳은 헤즈볼라 로켓 공격의 책임자라고 주장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슈크르를 표적으로 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3명이 사망하고 7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공습을 비난하며 “국제법을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위반해 민간인을 살해한 범죄 행위”라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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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건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지자 현지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최고 군사 사령관인 푸아드 쇼코르를 사살했다”며 “이번 공격은 지난 27일 골란고원 마즈달 샴스 마을에서 축구를 하던 12명의 청소년을 죽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베이루트 신화통신 연합뉴스
슈크르는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로 헤즈볼라의 최고 군사 기관인 지하드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83년 베이루트에 있는 미국 해병대 막사를 폭격해 241명을 살해한 사건에 가담했다. 미 정부는 슈크르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하고 500만 달러(약 69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미국은 확전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헤즈볼라 이인자의 죽음에 대해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니야의 죽음을 두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외교의 여지와 기회는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아랍 세력권은 일제히 하니야의 죽음을 낳은 이스라엘을 힐난하며 강도 높은 경고를 보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알아크사TV는 “하마스는 개념이나 기관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공개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하마스 연대 무장조직인 팔레스타인의 이슬라믹 지하드도 알자지라 TV와의 인터뷰에서 “살인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이란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예멘, 이라크 및 기타 저항 운동의 더 광범위한 지원을 이끌어낼 뿐이며 하니야의 빈자리는 곧 채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즈볼라 역시 하니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하마스의 결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가자지구 전쟁을 두고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어 온 러시아와 튀르키예 역시 규탄에 동참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대립각을 세웠던 튀르키예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의 목적은 가자지구 전쟁을 중동 지역 전체로 확장하는 데 있다”고 맹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적 암살”이라고 규정했다.
윤창수 전문기자
2024-08-01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