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을 찾기 위한 ‘톱다운 외교’의 첫발을 뗐다. 러시아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가운데 미러 정상이 우크라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반대와 우려 속에 돌파구를 마련해 낼지 주목된다.
1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이틀 뒤인 지난 7일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유럽에 상당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두 사람은 유럽 대륙 평화에 대해 논의했으며, 트럼프 당선인은 전쟁 해결 논의를 위한 후속 대화에도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푸틴 대통령에게 영토 문제를 잠깐 언급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식시킬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안보 참모 등 내부에서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일부 유지하는 내용의 거래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트럼프 당선인 측근들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최소 20년 유예하고, 현재 1200㎞에 이르는 전선을 그대로 둔 채 ‘비무장지대’를 조성하는 종전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돈바스,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자포리자, 헤르손)는 우크라이나 전체 면적의 20%가량이다.
WSJ는 트럼프 당선인 측이 비무장지대에 원칙적으로 유럽의 나토 회원국 병력만 주둔시키는 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신 미국은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깨고 재침공하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전쟁 억제 효과가 있는 무기는 계속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크렘린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를 일단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국영방송 러시아1의 텔레그램 게재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우크라이나 분쟁을 신속히 종식하겠다고 했고, 최소한 대립이 아닌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당선인은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욕구를 표명하지 않았다”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러시아로선 트럼프 당선인의 실제 의중을 떠보고 향후 전략을 짜려는 수순인 것으로 풀이된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지난 7일 WSJ 보도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 (트럼프 캠프가 아니라) WSJ가 만들어 낸 계획 같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는 건 유럽 전체에 자살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그는 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푸틴에게 굴복하고, 물러서고, 양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우크라이나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유럽 전체에 자살행위”라고 주장했다.
나토 역시 우크라이나와 같은 입장이다. 종점 협상이 본격화되면 유럽 진영은 ‘친미 포퓰리스트’와 ‘유럽 자위권 수호’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당장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 트럼프 취임 전 우크라이나 추가 안보 지원을 서두를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절차상 시간이 더 소요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현재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직접 제공한 군사 예산, 인도적 지원 액수는 약 1060억 달러(약 148조원)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가 미러 정상의 통화 사실을 사전 통보받았는지를 놓고도 공방이 일었다. WP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미러 정상의 통화를 사전 통보받았다”고 전했지만,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해당 보도가 거짓”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황은 한층 격해지는 형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주말 개전 이래 최대 규모 드론 공격을 주고받았고, 러시아는 북한군이 포함된 5만명의 병력을 쿠르스크로 이동시켰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하기 전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놓기 위한 양측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은 11일 트루스소셜에 ‘1기 행정부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톰 호먼이 ‘국경 차르’로 2기 행정부에 합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지 와일스 공동선대위원장의 백악관 비서실장 지명에 이어 두 번째 고위직 인사 발표로, 핵심 공약인 불법 이민 단속을 위한 신호탄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