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車통제 등 책임 논란
공직사회 향한 비판 목소리에
“미리 나섰다면 과잉대응 감찰”
일선 공무원들 자조 새어 나와
공무원 안전 관리 업무 기피
참사 땐 처벌 대상으로 낙인
24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이 138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렸다. 제방이 무너진 경위나 도로 통제가 제때 되지 못한 이유를 수사한다. 만약 제방을 더 높게 쌓았더라면, 진작 차량 통제를 했더다면, 대피 경보가 일찍 나왔더라면 식의 안타까움이 생기게 된 경위가 수사 대상이 되는 셈이다.
참혹한 사고만큼이나 중앙정부와 지자체,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에 시민 분노가 커지고 있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20일 또 다른 결의 자조가 새어 나왔다. 만약 미리 차량을 통제하고 대피 경보도 제때 울려 인명피해가 없었더라도 담당 공무원은 곤란해졌을 것이라는 한탄이다.
그러니까 이 ‘만약’이 다 실현됐다면, 도로 통제를 ‘과잉대응’으로 본 민원이 빗발쳤을 테고 그러면 해당 공무원들은 아마 감사나 감찰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공무원 익명 커뮤니티에서 오송 지하차도 시설관리 공무원을 지칭하며 ‘결과론적으로 그 자리는 사고 예방이 아니라 사고 났을 때 책임지고 처벌받기 위한 자리’라는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시민들의 분노’와 ‘공무원의 자조’ 사이 간극은 급변하는 각종 재난 상황에 적시 대응이 어렵게 설계된 공무원들의 업무 분장 체계에서 비롯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공무원들이 집중호우가 올 때 현장에 나가서 미리미리 대처해 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태에 대해 시민들이 진절머리를 치고 있지만, 현행 공무원들의 업무 분장은 ‘책상을 벗어나는 순간 문제가 생기는 체계’에 가깝게 설계돼 있어서다. 공무원들이 현장의 긴급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잇따르는 참사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세분화된 업무를 공무원 개인별로 배정해 둔 공무원식 업무 분장은 평소 행정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이 같은 ‘칸막이 문화’가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사정이 이번에 드러났다.
중앙·지방정부를 두루 경험해 본 관료는 “이번 지하차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청주시 하천관리 담당이 안전정책 담당에게 통보를 했는데, 도로 담당에게 통보가 이뤄져 미리 통제 대비를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른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천관리, 안전정책, 도로 담당 중 한 곳에라도 ‘적극적인 공무원’이 있었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만시지탄이지만, 현재 공무원 조직문화에서는 적극성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분위기다. 민원·안전 관리와 같은 기피 업무를 함께 하자고 부탁하면 조직 내 평판이 나빠지는 일을 감내해야 하는 부담도 져야 한다.
결국 안전 업무 담당자들은 대부분 평소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말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참사가 발생했을 때에는 충분한 지원인력이나 재량 없이 ‘참사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기 위해’ 책상을 뜨지 못한 채 여러 현장을 한꺼번에 챙기는 모습이 연출된다.
세월호 참사부터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 때까지 담당 공무원들이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는 선례들이 이어지면서 안전 관련 업무에서는 구인난도 극심하다. 일선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분쟁을 해결하다 지친 담임 교사는 휴직을 하고, 학교장은 조기퇴직을 신청하는 식으로 회피한다’는 풍문이 공직 사회에서는 ‘안전담당 공무원 앞에 놓인 길은 휴직, 감옥, 자살이라는 삼지선다뿐’이란 말로 변형돼 돌고 있다.
경직된 업무 분장 때문에 위기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현재 공무원 조직체계와 관련, 공무원 인적관리(HR)를 담당했던 전직 고위 공무원은 “어떤 공무원에게 무슨 일을 맡길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공무원 집단 전체의 역량이 잘 발휘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업무분장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 ‘Who(누구) 위주 업무 분장’으로는 평소 행정처리는 가능할 수 있지만, 재난 상황에선 적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How(어떻게) 위주 업무 분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