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교수는 국제 경제 분야에서 통상 실무 현장과 정책, 그리고 아카데미를 두루 섭렵한 실사구시형 지식인이다. 최 교수는 지난 해 9월 한 중앙 일간지에 G20 세계화 시대의 종언과 자유주의 가치 동맹을 강조했던 칼럼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또 다른 차원의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는 최 교수를 만나 우리 시대 화두인 세계화 질서의 종언과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근 세계화의 종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미·중 신냉전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경제와 안보가 커플링이 되는 상황 속에서 앞으로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1990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사라지고 전 세계적으로 국가가 시민들을 더 잘살게 해주는 경제 전쟁의 시대가 시작됐지요. 지난 30년 동안 체제가 달라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었고 기술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나 부품을 구매해 완제품을 찍어낼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세계는 디커플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야죠.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을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지 않겠다는 것이 트럼프였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런 운전수의 자리에서 그냥 내려서 도망갔습니다. 운전자 없는 세계화가 된 것이죠.(웃음) 그 바람에 안정적 질서가 혼돈 상태로 갔습니다. 동맹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틈에 중국은 과거 아시아의 맹주로 다시 돌아오려고 합니다. 시진핑은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보고 중국이 다시 패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 미중 패권경쟁, 충돌로 이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을 누가 키웠느냐 하면 미국이 키운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미소 냉전 시대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인 겁니다. 그러한 정책 속에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했습니다. 그 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인도나 중국의 많은 빈곤층이 가난에서 탈피했지만, 미국의 서민층은 경제적으로 별로 좋아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에서 잘나가는 0.1% 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서민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책은 이제 용도 폐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의 정책이 국내에 상당할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대외정책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으로 바이든이나 민주당이 밀고 있는 미국 투자 외국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식의 동맹을 이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토의 영향력은 매우 커졌습니다. 나토 입장에서 현재 공공의 적은 러시아입니다.
공화당이 집권하게 되면 달라질 겁니다. 트럼프는 친러시아 친사우디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집권당에 따라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지난 30년간은 공화나 민주, 누가 집권하든 지적인 리더십에 대한 워싱턴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깨진 상태이고 그것을 대체할 방법이 잘 안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 가운데 한국뿐만 아니라 자유 세계는 매우 큰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죠.
– 한마디로 운전자 없는 세계라는 느낌이 듭니다. 시장경제 측면에서 경제안보시대가 도래한다면 앞으로 동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경제안보시대에 대해 정의한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30년전 세계는 일종의 ‘묻지마 세계화’였기 때문에 생산자가 누구든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이 애플의 아이폰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21세기 초반 그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잡았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스티브 잡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jobs), 아이폰 만드는 그 많은 jobs(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면 안 되느냐?’라고 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사람들은 단순히 임금의 차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막을 보면 미국의 산업생태계가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만드는 각종 사소한 부품을 미국이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960~1980년대를 거치면서 제조업에서 미국의 전통적 비교우위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미국의 생각은 ‘off-shoring’이었습니다. 미국은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되고, 생산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부품을 만들겠다는 나라는 줄을 섰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동맹국은 미국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1960년대부터 이미 세계화는 진행이 되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도 그것을 따라 했지요. 미소 냉전이 끝나면서 이런 세계화 경향은 확대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략적 지형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생산기지로 중국을 택한 것은 원하는 것을 빨리 만들어 준다는 것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중국에서 만든 미국의 아이폰을 수출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이폰도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려고 합니다. 미·중간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세계화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마트폰은 일상 제품에 불과하지만, AI 인공지능 분야로 가면 더 심해지겠죠. 결국 핵심기술의 부품을 통제하는 것이 앞으로의 패권을 통제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미국 관점에서 보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반도체에 있어서는 중국이 너무 멀기 때문에 애당초 싹부터 자르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죠. 그 와중에 대한민국이 중간에 딱 걸린 것입니다. 한국의 핵심적 기업들이 호시절 중국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그 호시절이 지금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입니다. 각자도생과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때 나라는 무엇으로 정의되느냐 하면 결국은 생존과 번영 그리고 우리는 자유라는 가치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중국은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사업 파트너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동맹은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궁극적 목표가 한국을 제압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정점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지배하는 동아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시장, 우리의 기술, 우리의 경영 능력 같은 것들이 중국에 이용될 것은 뻔합니다. 따라서 최종적 결정을 기업의 CEO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거는 문제는 여야의 정치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집권하더라도 진폭의 폭은 변화할 수 있지만 방향성은 변하지 않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동맹 리더십이 관건
– 결국 자유라는 가치 동맹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리더십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워싱턴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데,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 민주주의를 돕는 것이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 연설은 우크라이나 국민뿐만 아니라 여전히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도움을 청하는 목적이 컸습니다. 그 연설을 보면서 연상된 것은 1941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미 의회에서 연설한 것과 오버랩됐습니다.
유럽에서 나치 파시즘에 다 굴복하고 영국 혼자 남아 있던 상태였습니다. 당시 영국의 정치 상황은 나치 히틀러와의 전쟁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그래서 체임벌린이 평화협정을 맺었고, 거기에 처칠은 반대하면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지도자는 그런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결국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실패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때까지 여러 실패를 겪었음에도 처칠이 총리에 오르는 데는 히틀러를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처칠의 나이가 60대 후반이었습니다. 처칠이 기댄 곳이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의 힘이 아니고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 시점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처칠의 연설은 힘을 받게 됐습니다. 미국이 참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1941년에도 미국이었고 2022년에도 미국이라는 겁니다. 80년 동안 여전히 슈퍼파워입니다. 1941년에도 미국은 경제적으로 영국을 제치고 슈퍼파워였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군사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미국의 전통적 고립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전쟁에 참전하게 만들었고 처칠과 루스벨트라는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80년 후 지금은 어떤 상황이냐 하는 겁니다. 여전히 미국입니다. 비록 상대적인 힘은 약해졌습니다만 미국 도움 없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만의 힘으로는 푸틴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현재 국내적으로는 공화 민주로 완전히 갈라져 있습니다. 이런 분열을 딛고 여전히 민주주의 챔피언으로 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미·중 갈등 속에 동맹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편, 한국이나 독일, 일본 같은 자유주의 핵심 국가들은 미국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봅니다. 그것은 곧 자국의 이익입니다. 미국의 선처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자국의 고민을 미국에 대놓고 이야기하고, 얼굴 붉힐 때 붉히더라도 헤어질 수는 없는 겁니다. 싸우다가 정든다는 말처럼 말이죠. 그 가운데 새로운 21세기 동맹이 만들어질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깃발 들 때 그 밑으로 들어가야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사실 국제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과거 1970년대 다자간 협정을 통한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중국에 대한 봉쇄를 보면 미국의 국내법으로 실질적 효력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태도를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에서 탈피할 수도 없습니다. 도덕적 완결주의로 가면 안 됩니다. 10개중에 8개가 좋아도 한 두 개가 나쁘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되고, 우선순위를 정해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동아시아 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 지금의 중국은 과거 미소 냉전과는 매우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냉전이라고 하지요. 미·중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남중국해는 국제법적으로는 공해입니다. 중국은 자신들의 내해(內海)라고 주장합니다.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화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국제법은 무시되고 무력화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정찰기 옆에 중국 전투기가 10피트(3m)까지 접근해서 위협 비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발적 충돌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대만 문제도 있습니다.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되면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하느냐도 문제가 될 겁니다. 미국, 한국, 일본은 여론에 따라 정책이 움직이는 민주주의 국가들입니다. 따라서 우발적 사태에 대비해서 국민의 예비훈련이라고 할까 정신적으로 대비가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국민적 예비훈련이라는 것은 가령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나면 한반도의 주한미군이 투입될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겁니다. 북한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중국은 북한을 이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겠죠.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복합적인 사태가 벌어질 때 우리 국민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제 문제에 식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부 정치세력이나 선동가들에게 놀아나면 어려움에 처할 것은 뻔합니다.
– 그렇다면 신냉전 시대에 한일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일본과 관련해서는 보수층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면이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가야죠. 90년대 후반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있었습니다.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역사적인 문제는 미래세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미래로 나가자는 정신을 지금도 그대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정치세력들은 왜 그 정신을 무시하고 국내정치에서 반일을 무기로 삼는지, 또 반대로 일본과 잘해보자는 쪽도 너무 민족적 감정을 무시하고 가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기본적인 지향점은 미래로 가는 데 둬야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논란은 있는데, 여전히 일본은 한국에 대해 특정 원료에 대해 수출 통제를 하고 있는 것도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은 일본제품 보이콧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팬데믹이 풀린 상태에서 가장 일본을 많이 방문하는 나라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세대는 20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도 일본이 가장 안전하고 보고 즐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래세대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우리가 짓밟으면 안 됩니다.
질풍노도 시기, 유연성 갖추고 인재 양성해야
– 앞으로의 시대는 노동과 지식이 하나 되고 또한 자본과 지식도 하나가 되는 사회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고등교육재단에 관해 설명해 주시죠.
제가 재단 사무총장을 2020년 9월부터 맡았습니다. 당시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는데 그 때 재단 이사장이 재단의 미래 비전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바로 교수를 한 것이 아니라 7년 동안 국제협상 무대에서 실무로 뛴 사람입니다. 그 당시 제가 IT-KOREA의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으로부터 개방압력을 받았던 많은 분야가 있습니다. 영화산업, 농업, 통신 분야도 있었습니다.
그때 통신은 지금 KT라고 하는 한국통신공사가 모든 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모바일 통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는데 우리는 미국의 압력을 소화해서 국내에 통신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현재 IT분야 강국이 됐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제가 국제무대를 뛰면서 생각한 것은 ‘우리는 왜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인력자산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협상 무대에서 보면 우리는 대표단이 모두 남자였습니다. 똑 같은 나라가 일본이더군요. 다른 나라를 보면 꽤 유능한 여성들이 와서 활약했습니다.
저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국제무대에서 뛰었는데 비록 젊은 나이지만 그때부터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화여대에 국제대학원이 생겼습니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도 중요하지만, 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일편단심 교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시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대학 모습과는 너무 달라 과연 한국에서 대학이 미래를 위한 인재를 키워내는 대학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조금 좌절과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못하던 것을 지금 여기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하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구성원도 많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다 있기는 합니다. 지금처럼 질풍노도의 변화무쌍한 시기에 대학은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우리 교육재단은 50년 동안 장학사업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1000명에 이르는 박사를 길러냈습니다. 1974년 SK 설립자 최종현 회장님이 만든 재단입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학자보다는 안정적인 직업, 평생 철밥통 공무원, 아니면 의사나 변호사를 추구합니다. 그렇게 가면 우리 미래가 좀 재미가 없지 않을까요? 우리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고 쟁취한 자랑스러운 세대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기성세대가 실패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만 가르친 겁니다.
일종의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입니다. 좀 더 멋진 국가, 품격 있는 나라가 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남들보다 앞선 사람들이 우리 공동체와 미래를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직 남들보다 앞서가려고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 재단은 미래세대를 위한 리더십, 전 세계와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취지여서 제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많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학, 대학원생들이 참여해서 전 세계와 호흡할 수 있는 리더십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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