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승리 헌신… 운동권 정치 청산”
공천 조건에 불체포특권 포기 요구
“당보다 국민”… 고강도 쇄신 예고
김건희 특검엔 “총선용 악법” 고수
“이재명 민주당과 달라야”… 野운동권 직격, 당엔 희생 압박
한동훈(50)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희생을 먼저 실천하며 당에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예고한 것이다. 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한 후보만 공천하겠다며 당내에 특권 내려놓기를 주문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날 전국위원회를 열고 한 위원장에 대한 임명안은 찬성 627명·반대 23명으로, 비대위 설치안은 찬성 641명·반대 9명으로 가결했다. 비대위는 비대위원 인선이 끝나는 오는 29일쯤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당사에서 수락 연설을 하며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며 “오직 동료 시민과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승리를 위해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승리를 위해 뭐든지 다 할 것이지만, 제가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총선 불출마 발표에 여당에서는 ‘중진 희생론’ 혹은 ‘영남 물갈이론’을 당에 요구하려는 배수의 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띄우고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이 촉발한 인적 쇄신 물결을 잇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히 범보수권의 대선주자 1위로 꼽히는 한 위원장이 초선 의원 당선 대신 비대위원장으로 총선 승리를 이끄는 소위 ‘대선 직행 경로’를 택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역대 비대위원장 중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포함해) 불출마한다고 한 사람이 없다”며 “중진 의원들에게 매우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정치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뜻을 연설 내내 강조했다. 공천 조건으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를 요구하며 “국민의힘은 공직을 방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의식 없는 분들만을 국민께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약속을 어기면 ‘출당’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달라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기력 속에 안주하거나 계산 뒤에 몸을 사리지 말고 국민의 합리적인 비판에 바로바로 변화하자고 했다.그는 이 발언을 포함해 이 대표를 줄곧 비판하며 민주당의 ‘86운동권’에 대한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총선 승리에 대한 절박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년간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으로 과거 운동권 출신을 가리키던 용어)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총선 승리 전략의 전제는 자기비판과 자기반성임을 분명히 했다. 한 위원장은 “상대 당 (이재명) 대표가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중대범죄로 형사재판을 받는 초현실적인 민주당인데도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함께 냉정하게 반성하자. 국민의힘이 잘하는데도 억울하게 뒤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궁극적으로 정치는 당의 존재 이유인 국민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당내 정치적 논리에 매몰돼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방향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는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가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 표현하며 소위 여의도식 문법과 차별화하자고 했다. 이어 그는 “무릎을 굽히고 낮은 자세로 국민만 바라보자.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라며 “선당후사라는 말 많이 하지만,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했다.한 위원장은 수락 연설 후 곧바로 대구·경북(TK) 초선 김형동(48)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경북 안동·예천이 지역구인 초선 의원으로 당내에서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준석 전 대표 시절 수석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이날 비대위원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른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표심을 잡을 인사를 선임하려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비대위 합류 제안을 받았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이날 “제 코가 석 자다. 수원 선거에 몰두하겠다”며 거절했다.
최근 표현한 대로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상황에 대타로 등판한 ‘정치 신인’ 한 위원장 앞에는 수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28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예고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문제다.
한 위원장은 이에 대해 “총선을 위한 악법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당에서, 원내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충분히 보고받고, 같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과 정부는 지난 25일 비공개 당정회의에서 ‘수용 거부’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한 위원장은 ‘5000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라고 폼을 잡지만, 야당에 대한 비난으로 점철된 취임 첫 일성을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다른 것이 없다”며 “어떻게 취임 첫 일성으로 그간의 국정운영 실패,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 한마디 없이 제1야당의 대표에 대해 모독과 독설부터 뱉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결국 윤 대통령의 공천 지령을 전달할 대리인이고, 김건희 여사를 지키기 위한 호위무사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