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조합원들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먹거리와 그에 연결된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심과살림연구소는 2020년 청년프로젝트를 통해 한살림 청년 조합원 먹거리 인식조사 보고서: 현재를 위한 담론을 발간하고, 지난 7일 한살림연합 교육장에서 온라인 중계와 함께 결과 발표회를 진행했다. 보고서는 ‘한살림 2030 청년조합원 먹거리 수다회’, ‘한살림 30대 조합원 먹거리 인식조사 및 FGI 결과’, ‘고민의 확장’ 등 세 가지로 구성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청년들의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한살림) 조합원 가입 이유다. 지난 2018년 인식조사에서는 ‘주변의 추천’이나 ‘다른 생협에서의 이동’ 같은 간접적인 이유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처럼 개인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한 응답 비율이 많아졌다.
또 청년 조합원들은 단순히 물품을 구입하는 행위 뿐 만 아니라 사회문제나 개인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로의 한살림을 원했다. ▲비건 ▲젠더 ▲기후위기 ▲공장식축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에 모심과살림연구소 청년연구팀은 “단순히 먹거리를 구매하는 행위 외에도 생산부터 운송까지 다양한 과정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청년들의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먹거리 문제 고민
청년 조합원들은 과거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생협에 가입하고 먹거리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개인의 삶과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경향도 높았다.
20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SNS 수신에 동의한 청년조합원 4157명 중 응답 자 128명)에 따르면 먹거리와 관련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문제를 묻는 질문에 ▲환경문제 ▲개인의 건강 ▲공장식 축산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청년조합원들은 ▲비건 ▲GMO식품에 대한 논의 ▲1인가구 수요에 맞는 먹거리 소분과 환경이슈 ▲윤리적소비 토론 등을 사회적활동 의제로 관심을 가졌다.
한살림 조합원 가입계기는 ▲건강한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57.03%)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가족 혹은 친구의 권유(24.22%) ▲한살림이 추구하는 생태적 가치에 공감해서(10.16%) ▲조합원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3.91%)가 뒤따랐다.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건강문제(26.56%) ▲기후위기 및 생태계에 대한 관심(15.63%) ▲먹거리 생산과정에 대한 관심(10.94%) ▲먹거리 소비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관심(10.16%) 순으로 응답이 기록됐다.
모심과살림연구소 청년연구팀은 2018년 의식조사와 2020년 청년프로젝트에서 질문의 차이가 있지만 2018년 의식조사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아는 사람의 소개(78%) ▲한살림 매장을 보고 가입(23.3%) ▲다른 생협을 이용하다가 한살림을 알게됨(28.3%) 등에 비해 가입계기가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한살림에서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을 묻는 주관식 문항에서는 ▲물품과 운영에 대한 피드백(채식 물품 다양화, 포장간소화, 배송의 원활함 등) ▲20대의 관심과 참여를 모을 수 있는 주민 및 청년대상 활동 지원 등의 의견이 있었다. 20대의 참여를 위해 평일이 아닌 주말에 활동을 기획하는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모심과살림 청년연구팀은 “청년들의 응답을 살피면 생산부터 유통까지 먹거리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한 살림에서 다양한 의제 논의를 통해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 계기를 마련하고 그 폭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조합원이 관심 갖는 의제는 성불평등, 비건, 노동, 기후위기
청년조합원들은 생협이 주요하게 이끌어 왔던 기존 의제보다 기후위기, 성불평등, 비건, 노동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청년먹거리연구팀은 인식조사에서 핵심 키워드로 도출된 ‘기후위기와 비건’, ‘성불평등과 인권’, ‘청년과 지역활동’, ‘청년의 삶과 지역’, ‘청년의 삶과 먹거리’를 주제로 응답자들의 경험과 고민을 심층적으로 알아보는 초점집단인터뷰(FGI)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불안정한 주거와 노동환경, 규정된 청년 정체성의 한계 등으로 가치관을 드러내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파악했다.
설문 참여자들은 한살림운동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었지만, 청년조합원이 관심을 가지는 의제가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때문에 한살림을 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 응답자는 “한살림에서 비거니즘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며 “아주 초기 수준의 논의에서 멈춰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응답자도 “기후변화나 생태 문제 혹은 동물권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어 다른 생협이나 일반마트에서도 비건식품이나 제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일반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요인 중에서 비거니즘 부분에서 큰 차별점이 없는 부분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응답했다.
공동체성에 대한 기대의 부응보다는 사업체로 한살림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한 응답에서 ▲가치관 일부 일치 ▲대체방안의 부재로 한살림 이용 ▲생산자와 연결되는 방식이 단순해 영리기업의 마케팅과의 차별점이 크지 않음 ▲청년 조합원의 생활형태나 가치 지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겪음 등의 의견이 많았다. 청년먹거리연구팀은 “일부 응답자의 경우 한살림 내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모성애적 역할의 강요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조합원 간 관계맺음에서 규정된 성별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문이나 접근에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설문참여자들은 자신의 문제와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때문에 거주 지역에 카페나, 수선집, 이웃 등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비빌언덕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한 응답자(27세)는 “지역에 정말 자잘한 문제도 많고 굵직한 문제도 많은데 집에 올 때 자러 온다는 느낌이 강해 내 지역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긴 어렵다”고 청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보고서는 청년 대부분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주거와 노동환경을 고려한 청년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지역에서 함께 고민과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확장을 위한 장치의 필요성 또한 설명했다.
‘고민의 확장’ 보고서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노동 ▲주거 ▲젠더 등의 의제를 다양하게 살피며 문제의식 확장의 필요를 제안했다. 이어 청년과 한살림 내에서도 청년-청년, 청년-매장-한살림, 청년-젠더-한살림, 청년-지역-한살림, 청년-비건 등 다양한 관계가 있음을 설명하며 관계를 고려한 다양한 의제들이 발굴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내 청년 조합원들의 응답 내용 일부>
1)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비건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존재를 생각하는 다양한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주로 먹었고요.”(아, 20~25세)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친환경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농약 중 풀약, 제초제 같은 것들을 사용하는데, 그러면 풀이 다 타 죽거든요. 드시는 분들은 완성된 것만 보니까 모르시지만 농민들은 그 과정을 다 보고 있잖아요. 성장을 촉진하는 비대제를 쓴다거나, 착색제를 쓴다거나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소비자들이 정보를 어떻게 알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요.”(라, 31~35세)
2) 먹거리의 안전과 건강
“처음에는 건강함을 지키고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자는 생각으로 먹거리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다 유기농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는데, ‘유기’가 단순히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을 넘어 서로 연결된다는 의미를 가지잖아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품을 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생산자를 생각했을 때, 그럼 소비자도 어떤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겠구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서로의 연결되는 관계 속에서 고민할 때, 더불어 건강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가, 20~25세)
3) FGI 주요 내용
“소수자 정체성은 여러 가지가 교차돼 있다고 느껴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고, 그것이 결국 생존의 위협까지도 가게 된다는 것이 느껴져요. 코로나 초반에 목욕탕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엄청 비난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집에 제대로 된 욕조가 없을 수도 있고, 당장 온수를 사용할 수 없는 등 수많은 이슈가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비난을 받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기후위기 상황과도 연결된다고 느껴요. 나는 그냥 어느 정도 조금 비켜져 있는 것뿐이지만, 언제든 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B, 25세)
“한살림이 비건을 왜 다루어야 하는지 당위성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한살림이 지향하는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서 검색을 해보니 나온 주된 키워드가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는’ 이더라고요. 그에 가장 부합하는 실천이 비거니즘이 아닐까요? 생명을 살리는데 경중을 우리가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바로 떠오르는 게 동물권이었어요.” (B, 25세)
“비거니즘에 대한 문제도 한살림에서 얼마나 논의가 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비거니즘에 대한 논의가 아직 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절에서 진행하는 뷔페를 가면 거기는 콩고기를 사용해서 채식을 하는데, 그 정도의 형태에만 머물러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B, 25세)
“품목 다양화, 새벽 배송을 할 경우. 한살림이 체질 개선을 하려다가 쿠팡이나 마켓컬리처럼 노동자에 대한 이슈, 인권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갈아서 하게 된다면, 그것이 (그런 사업 형태의) 필연적 결과라면 저는 굳이 그 길을 한살림이 따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분이라면 아마 새벽 배송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살림이 물품 다양화나 새벽 배송을 하면서 기본가치인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B, 2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