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의 아쉬움 속에 지난 5월 문을 닫았던 진주 남성당 한약방 건물이 보존된다.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해온 김장하(78)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 건물을 진주시에 매매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30일 진주지역 시민사회의 든든한 후원처였던 남성당 한약방이 문을 닫자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한약방을 남겨 그 의미를 되새기고, 후원문화 정착에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진주시도 재선에 성공한 조규일 진주시장 지시로 지난 6월 매입을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시는 1층은 그대로 보존하고 2층과 3층은 교육공간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김장하 전 이사장이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라도 기념관 등이 들어설까 우려한 김 전 이사장이 반대하면서 사업은 답보상태가 됐다.
이에 진주시장이 김 전 이사장을 최근 직접 만나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시는 일단 구상대로 사업을 추진하되 김 전 이사장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김 전 이사장은 1944년 사천에서 태어나 삼천포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열아홉 살 최연소로 한약종상 면허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0년간 사천에서 한약방을 하다가 1973년 진주 동성동으로 이전했다. ‘용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처에서 약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았고,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검소하게 생활했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평생 나눔을 실천해왔다.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 뒤 무상으로 국가에 헌납했다. 그는 진주지역 문화예술단체, 언론, 역사,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 전 영역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 진주시민주로 창간한 <진주신문> 창간 주주 겸 이사로 활동했고,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해 2004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도 맡았다.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진주가을문예를 만들어 문학신인 발굴에 힘썼고, 진주오광대 복원을 비롯해 마당극 전문극단 큰들, 극단 현장 등을 지원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자산 34억 5000만 원을 경상국립대 발전기금재단에 지정 기탁했다. 자산은 기본자산 현금 6억 5000만 원과 서경방송 발행 주식 2만 주(평가액 28억여 원) 등 34억 5000만 원이다.
/김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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