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대학생들이 24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케타에서 탈레반의 ‘여성 대학교육 금지’ 명령에 항의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자국 내 구호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이 활동하는 것을 금지했다. 며칠 전 여성의 대학교육을 금지한 데 뒤이은 여성 억압정책이어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다.
탈레반은 24일(현지시각) 경제부 장관 명의의 서한을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들에 보내 “국내외 기구에서 일하는 여성이 이슬람식 히잡 착용과 다른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모든 기구는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여성이 일하지 못하도록 지시한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허가증을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지만 탈레반의 지시가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외국 여성에게도 적용되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조처는 탈레반이 지난 20일 이슬람 복장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여학생들의 대학 수업 참여를 금지한 지 한 주도 채 안되어 나온 것이다. 국제 구호단체는 아프간에서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인권단체는 여성의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는 “탈레반의 통지를 받고 구호단체의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며 “곧 비정부기구 관계자 대표들이 모두 모여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제 구호단체인 ‘국제구조위원회’(IRC)는 성명을 내어 “아프간에서 일하는 3천명 넘는 여성 요원은 구호활동의 전달 체계에서 핵심적”이라고 우려했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구호활동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여성들은 인도주의 활동에 핵심적 구실을 한다며 이번 탈레반의 조치는 몇백만명을 살리는 구호활동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탈레반의 조처는 국제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생계도 위협한다. 한 아프간 여성은 “구호단체에서 일해 받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했는데 이제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냐”고 말했다.
라미즈 알락바로프 유엔 아프간 특별대표는 이에 대해 “인도주의 원칙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탈레반 지도부를 만나 명령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겠다”고 말했고,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 나빌라 마스랄리는 성명을 통해 “최우선 관심사는 아프간 국민의 안녕과 권리, 자유”라고 탈레반을 비판하고 이번 조치가 현장의 구호활동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AI)는 “여성을 정치·경제·사회 영역에서 지워버리려는 개탄할 시도”라고 반발했다.
이날 아프간 남부 도시 칸다하르에서는 이번 조치에 항의해 남학생 400여명이 시위를 벌였으나 당국에 의해 해산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