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만난 韓총리 “의정 대화체 구성 희망”… 전공의들은 무대응
尹 “증원, 의료개혁 출발점” 못박아
與 안철수·최재형 등 ‘재검토’ 촉구
한동훈 “의제 제한 말고 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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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연건캠퍼스 의과대학에서 열린 의료·교육계 관계자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한 총리는 “오늘 자리를 통해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체가 구성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도준석 전문기자
26일까지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18개 대학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던진 가운데 정부가 5월 안에 ‘의대 2000명 증원’ 후속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며 ‘쐐기’를 박았다.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의대 교수들을 향해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조건 없이 대화에 임해 달라”고 했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증원 규모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협상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대 증원 규모가 대학별로 확정돼 의료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만들어졌다”며 “의대 증원은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의대 정원을 의료계와의 대화 의제로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또 “늘어난 정원 2000명을 지역거점 국립의대를 비롯한 비수도권에 중점 배정하고, 소규모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지역·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했다. 의료계를 향해선 “의료개혁을 위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제자인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설득해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25분여의 모두발언 가운데 9분을 의료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보건복지부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5월 내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면허정지 처분을 잠시 미뤘을 뿐 면제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교육부는 각 의대를 방문해 교육여건 개선에 필요한 현장 의견을 듣는 등 후속 절차를 밟아 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4일부터 정치권의 중재가 시작되면서 주도권이 ‘여의도’로 넘어가 정부가 ‘2000명 증원 방침’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전망도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은 성남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갑자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고,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리면 부실 교육이 돼 의료 수준이 떨어지고 파국이 온다”며 “점진적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대 증원 적용은 3~6개월간 과학적인 추계와 합의 이후에 추후 적용해야 한다”며 의정 합의체가 아닌 범사회적 의료개혁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수도권 출마 후보들도 유연한 자세를 주문했다. 서울 종로에 출마하는 최재형 후보는 YTN 라디오에서 “정부도 ‘의대 정원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에서 좀더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대화 물꼬가 트인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울산 신정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제를 제한하지 않고 건설적인 대화를 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증원 규모 조정도 대화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치권이 의대 증원 정책의 후퇴를 시도하고 있다”며 “선거 앞 의대 증원 흔들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대화는 필요하지만, 의료계의 무조건적인 정책 철회 주장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며 “왜곡된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해 국민이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계를 꾸준히 설득 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료계·교육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울산대 등 서울 주요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대학 총장들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 윤을식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 총리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체가 구성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향후 의정 대화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데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어 대화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25~26일 사이 서울대 의대 등 18개 대학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15개 대학이 이번 주 내에 사직서를 낼 예정이거나 시기를 조율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은 28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했다. 전남대·조선대 의대 교수들도 29일까지 사직서를 취합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각 대학병원에 의대 교수들의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 달라는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앞서 전의교협은 외래 진료 등을 줄여 주 52시간 근무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재성 아주대 의대 교수협의회 의장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한 달이 넘도록 논란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정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원 문제를 꺼내 든 것 같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이현정·유승혁·한지은·안석·명종원 기자
2024-03-27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