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 “정치를 풀어가기 위해선 수뇌부가 너무 앞장서면 안돼”
정계원로인 김중권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83)가 26일 서울 마포구 개인 사무실에서 e대한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안윤수 기자 |
“정치를 풀어가기 위해선 수뇌부가 너무 앞장서면 안 됩니다. 요즘 걸핏하면 원내대표가 나와서 싸움꾼처럼 말하더군요. 당에서 원내대표가 말하면 누가 거둬들이겠습니까. 계속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정계원로인 김중권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83)는 26일 서울 마포구 개인 사무실에서 e대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여야 지도부에 이같이 주문한 뒤 “수뇌부에 있는 사람이 확실하게 얘기를 해버리면 거기서 후퇴가 안 된다.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인데 그게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는 “우리 때는 막 싸우다가도 저녁 때가 되면 모여서 나라 걱정하고 또 양보할 거 양보하고 그렇게 해왔다. 그래야 정치가 풀리는 것 아닌가”라면서 “요즘은 그거 안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이전에 대해선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고, 또 ‘나의 대통령’, ‘우리 대통령’이라는 친근함을 표시하고, 국정 운영의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시기적으로 ‘지금이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비대위 구성에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한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선 “(법적 대응은) 정당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정치를 사법에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북 울진 출신인 김 전 실장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8회) 합격 후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1981년 11대 총선을 통해 정계 입문했다. 당시 민정당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뒤 13대(1988~92년)까지 내리 3선을 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돼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첫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김광원 후보에게 16표차로 낙선한 뒤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맡아 1년간 집권여당을 이끌었다.
청와대 근무 경험자로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국익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하시나?
“나는 1997년 12월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임명되고 두 달 반 뒤에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했다. 그래서 당선되니까 1차로 ‘청와대 이전’을 하명하셨다. 나는 과거에 청와대 근무 경력도 있고, 청와대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니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내 논리는 청와대를 옮긴다면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고, 광화문으로 옮기게 되면 국민들이 굉장한 교통 불편을 겪게 된다는 등의 이유를 말씀드렸다. 나중에는 총무처 장관과 차관이 대통령 앞에서 ‘불가하다’는 것으로 보고하자 결국 청와대 이전이 안된 것이다.
그런 경험을 전제로 질문에 답하면, 난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 이전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1997~98년 아닌가. 그로부터 24~2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에 우리가 국정운영을 해보니 대통령이 어느 사이에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지경에 왔다. 당시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장구한 기간 동안 그것이 고착되다시피 대통령의 권위가 청와대에 갇힌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고, 또 ‘나의 대통령’, ‘우리 대통령’이라는 친근함을 표시하고, 또 국정 운영의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시기적으로 ‘지금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이다. 이전지역도 광화문보다 용산이 더 낫다고 생각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전후에 갇혀 있는데, 원인 진단과 처방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예외 없이 문재인 정권 교체 열망이 강했다. 정권교체 열망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이 정치력이 뛰어나고 리더십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가치 때문에 그 분을 선택하고 또 그렇게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권교체 열망이 깊었다고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새 정부가 들어섰으면 잘못된 국정운영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걸 바로 맞춰야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요소가 해결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군데가 그렇다. 그 점에서 지지 세력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의 뉴욕 방문 중 불거진 ’비속어 발언‘ 논란에 대한 견해는?
“대통령이 공식 석상은 말할 것도 없고. 사석에서라도 말을 조심해야한다. 지난번에 권성동 원내대표와 ‘내부총질’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국가원수로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집에서 단둘이 있을 때는 희한한 얘기도 할 수 있지만, 이미 상대가 국무위원이면 그건 사석이 아니다. 국무위원과 할 때는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난 윤석열 대통령을 잘 모르지만 ’저분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다. 그 분은 평생 동안 검사를 한 사람이다. 정치인이 아니다. 수사를 위해서는 갖은 얘기를 다한다. 욕도 하고 윽박지르고 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은연중에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 지도자로서 리더십 함양이 필요한 것 같다.
“난 윤 대통령에 대해서 큰 기대를 안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 분은 평생 검사하면서 정의 구현을 위해 칼자루를 잡고 수사했던 분이다. 이 분이 대통령이 되면서 과거에 김대중·김영삼 대통령 같은 분들이 가졌던 권위도 없고, 리더십도 거기 못 따라가고, 카리스마도 없다. 정치를 매끄럽게, 유연하게 하고 권위를 가지고 나라를 통치하는 그런 것까지는 기대하진 않는다. 그 분의 랜드마크는 공정과 정의다. 공정과 정의를 이 땅에 갖고 오면 성공한 대통령인 것이다. 적어도 이 땅에 무너진 법치를 되살리고, 공정 가치도 끌어올리고, 인권을 되찾고 하면 이 사람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난 그걸 기대하는 것이다.”
집권여당 내부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견해는?
“솔직하게 말하겠다.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았고, 또 대통령 비서실장도 했고, 또 집권여당 대표도 하면서 나는 정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집권여당 대표의 역할과 기능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대통령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당정은 하나가 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준석 전 대표는 독특하지 않나. 그 분은 여당 대표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여당대표라면 당과 정이 한 몸이 되게 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없다.
예를 들면 여당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다 하는가. 또 하고 싶으면 직접 내가 하는 거 아니다. 대변인을 시켜서 하든지, 아니면 그 당의 전문기관을 통해 돌려서 얘기하게 하든지.. 자기가 전면에 나서 버리면 당사자가 되는데, 당사자는 자기 주장만 할 것 아닌가. 전혀 조정을 못하는 것이다. 이 분이 그걸 못하더라. 하고 싶은 얘기를 막 뱉어 버리더라. 여당 대표로서 중요성과 기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비대위 구성에 법적 쟁송을 하는 걸 보라. 그건 정당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정치를 사법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3권이 독립하고 중립적으로 해야 할 텐데 사법의 그늘 속에서 스스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여당 대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기분 나쁘고 생각이 안 맞더라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다음을 봐야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혐의에 대한 검경 수사를 놓고 야당은 “먼지털이식 정치보복”, 여당은 “법 앞에 평등”을 각각 주장하는데, 견해는?
“그 문제는 이렇게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법치국가 아닌가. 법 앞에는 다 평등하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이재명 대표가 지금 갖가지 사법리스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 자기가 참 억울하고 무혐의하다면 나와서 밝혀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당대표이기 때문에’, ‘내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숨는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여야간 흥정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리하고 가는 게 이 대표한테도 유리한 것이다. 깨끗하게 괜찮다고 판단돼야만 다음에 대통령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찜찜하게 넘어가면, 정치적 배려나 고려 때문에 넘어간다면 두고두고 얻어맞게 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야가 한치 양보없이 대치 중인데, 어떻게 평가하시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밀월기간이라는 게 있다. 야당 입장에서는 정권을 뺏겼기 때문에 기분 나쁘고 견디기 어렵겠지만 밀월기간 동안은 ‘어디 잘하나 보자’며 6개월 정도는 참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밀월기간이 안 지켜지는 것이다. 밀월기간을 약속한 건 아니지만, 그걸 인정해 주지 않고 처음부터 공격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169석이라는 다수당 위력 때문에 거기에 도취된 것이다. 힘의 논리로, 수의 논리로 압도하는 것은 안 맞다. 언젠가 자기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밀월 기간 동안은 한번 하도록 밀어주고 도와주고 그 다음에 정정당당하게 국회에서 승부를 걸어야한다. 그것도 야당이 할 역할이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충고 말씀을 주시다면?
“정치를 풀어가기 위해선 수뇌부가 너무 앞장서면 안 된다. 요즘 걸핏하면 원내대표가 나와서 싸움꾼처럼 말하더라. 당에서 원내대표가 말하면 누가 거둬들이겠는가. 계속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뇌부에 있는 사람이 확실하게 얘기를 해버리면 거기서 후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접합점이 안 되는 것이다. 정치란 것은 갈등의 조정인데 그게 안 된다. 그런 면에서 걱정이 되고 우려가 되는 대목이 많다. 우리 때는 막 싸우다가도 저녁 때가 되면 모여서 나라 걱정하고 또 양보할 거 양보하고 그렇게 해왔다. 그래야 정치가 풀리는 것 아닌가. 요즘은 그거 안하는 것 같다.”
권혁식기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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