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신들 “오징어 게임·기생충·BTS, 역사 바꿔”…호평 이유는?
거액 놓고 다투는 ‘오징어 게임’
상하층 빈부격차 다룬 ‘기생충’
에미상 6관왕·오스카 4관왕 차지
부익부빈익빈·계급 충돌 형상화
K콘텐츠 속 불평등, 세계가 공감
까다로운 한국 관객 눈높이 맞춰
음향·CG 등 기술력도 계속 성장
“‘오징어 게임’과 이정재가 에미상의 역사를 새로 썼다.”
12일(현지시간)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주역인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6관왕을 차지하자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평을 내놨다.
K-콘텐츠가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외신의 반응은 사실 새롭지 않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을 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제목은 “기생충이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었다”였다. 같은 맥락으로 BTS(방탄소년단)가 미국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자 미국 롤링스톤은 “BTS가 역사를 바꿨다”고 평했고, USA투데이는 BTS의 그래미어워즈 진출에 “BTS가 그래미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가 바꾼 ‘역사’는 무엇일까?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 서구가 중심이라는 사고가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의 시작점이다. ‘오스카 소 화이트’(Oscar so white)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백인과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강한 아카데미를 비롯해 좀처럼 비주류 콘텐츠에 눈길을 주지 않는 주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최근 몇 년 사이 괄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는 한국은 변방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방송, 영화, 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K-콘텐츠가 서구 대중의 선택을 받고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연단에 서는 모습은 그동안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의 새로운 챕터로 읽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외신들은 일제히 “역사를 바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화적 변방으로 치부되던 K-콘텐츠가 서양·백인 중심의 인종적·언어적 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빈부격차’ ‘계급투쟁’이라는 시대적 문제를 미적으로 정제된 틀 안에 흥미롭게 도식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빈부격차와 도덕적 파탄에 대한 현실 세계의 우려를 다룬 시리즈는 세계적 현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공통분모는 ‘계급 대 계급’의 충돌이다. ‘기생충’은 이층집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 벙커 등 각기 다른 주거 공간과 이에 닿는 계단의 이미지를 통해 상하층의 사뭇 다른 삶을 형상화한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이라는 거액이 매개다. 이 돈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가난한 참가자, 그리고 이 돈을 내놓고 그들의 아귀다툼을 보고 즐기는 기득권 세력의 모습은 거대한 기업을 구성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계급투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 사회가 표면적으로는 민주화됐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상위 계층은 하위 계층을 핍박하고, 하위 계층은 주류 계층으로의 상승을 꿈꾼다”면서 “오랜 기간 신분제 사회를 경험한 한국에서는 여러 콘텐츠를 통해 이런 계급갈등과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K-콘텐츠 속에 담긴 그런 살풍경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감하며 자신의 불평등을 새삼 깨닫는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K-콘텐츠의 첫 번째 손님인 한국 대중의 눈높이가 높다는 것도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계기가 됐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국내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CG와 VFX, 음향과 미술 등 기술적인 부분도 크게 성장했다. 황 감독은 “취향이 까다로운 한국 관객 덕분에 조금씩 발전하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관객이) 좋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자’는 내 신조처럼 시즌2로도 기대에 응답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에 넷플릭스를 필두로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시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넷플릭스가 지금까지 K-콘텐츠에 투자한 금액은 1조 원 규모. 지난해에만 5000억 원, 올해는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디즈니+ 역시 “한국은 트렌드세터”라며 한국을 사업 전략의 요충지라고 밝히고 있다.
안진용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