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사관 피격에 보복… 200여기 드론·미사일 공격
이스라엘 “99% 요격”응징 예고… 바이든 “반격 반대”
5차 중동전쟁 위기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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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무인기, 한밤 이스라엘 공습
13일(현지시간)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드론(무인기)이 요르단 암만 상공에서 포착된 모습. 이란은 이스라엘이 지난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급 지휘관을 제거한 지 12일 만인 이날 이스라엘에 미사일과 드론 등 200여기를 쏴 대규모 심야 공습을 단행했다. 이번 사태가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암만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이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13일(현지시간) 밤 이스라엘에 200기 넘는 드론(무인기)과 미사일을 쏘며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방공체계) 등 방공체계로 공습을 막아낸 뒤 재보복을 공언했다. ‘45년 앙숙’인 두 나라가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가면서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이후 50여년 만에 ‘5차 중동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4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의 점령지와 진지를 향해 수많은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다”면서 “‘진실의 약속’이라고 명명한 보복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 영토 내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고 이란 국영 IRNA통신이 보도했다.
이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반미·반이스라엘 대리세력 ‘저항의 축’도 공습에 가세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불법 점유 중인 시리아 골란고원 내 이스라엘 방공 진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예멘 후티 반군도 이스라엘 방향으로 무장 드론을 날렸다.
모하마드 레자 가라에시 아시타니 이란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에 영토나 영공을 개방해 이란에 대한 반격을 돕는 나라는 우리의 단호한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P통신은 “1979년 혁명으로 이란에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뒤 이스라엘을 향한 최초의 전면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습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IRGC 쿠드스군(특수부대) 사령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등 군인 7명을 제거한 지 12일 만에 이뤄졌다. 이란은 13일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이스라엘 관련 선박을 나포한 데 이어 이스라엘 본토를 겨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해 ‘전면전 불사’ 의지를 드러냈다. 이슬람 율법의 키사스 원칙(당한 만큼 돌려주라)에 따른 대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시내각 회의를 소집해 긴급 대응에 나섰다. 전시내각은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드 국방부 장관, 네타냐후의 정치적 라이벌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 3인으로 꾸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회의에서 “뚜렷한 원칙을 결정했다. 우리를 해치는 자들은 누구든 공격받을 것”이라고 재보복 의사를 천명했다.
회의 뒤 네타냐후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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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에 환호하는 이란 시민들
14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영국대사관 앞에 모인 이란 시민들이 이란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전날 밤 이스라엘에 드론(무인기)과 미사일 200여발을 쏘며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테헤란 AFP 연합뉴스
액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스라엘의 어떠한 반격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백악관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란에 대한 재보복 수위는 미국 등 동맹국과 의견 조율을 통해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14일 “이란이 1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미사일과 드론을 200기 넘게 발사했다”면서 “이 가운데 99%를 요격했다. 지금까지 소녀 1명이 다치고 남부 네게브 지역 군기지가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차단했다고 보고 자국민에 내린 대피 명령도 모두 해제했다.
공습 직후 이스라엘은 “이란 및 대리 세력의 이스라엘 공격 계획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전면 경계태세를 갖추고 행동지침을 내리는 등 전면전 대응 수순에 돌입했다. 각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야외 청소년 활동도 취소됐다. 1000명 이상 대중집회도 금지해 수시로 열리던 네타냐후 총리 반대 시위가 중단됐다.
오피르 겐델만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예루살렘 성지를 겨냥했지만 아이언돔 포대가 모두 요격해 성전산과 알아크사 사원을 구했다”고 적었다. 미국 백악관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안보팀으로부터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엄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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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방송은 “이란이 미군 및 민간인 시설을 빼고 이스라엘 군 기지 타격에 집중하는 등 나름대로 수위를 미세조정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7일 가자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내 친이란 후티 반군 등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하는 데 대한 반발로 홍해 지역 공격을 감행하면서 역내 긴장감이 고조됐다.
특히 지난 1월 가셈 솔레이마니 IRGC 사령관 4주기 추도식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100여명이 숨지고,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직접 타격해 IRGC 고위 간부들이 숨지면서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이스라엘 타격 직전 IRGC는 13일 호르무즈해협에서 포르투갈 선적 컨테이너 화물선 ‘MSC 에리즈’를 나포해 보복 대응에 나섰다. 이 배는 이스라엘 재벌 에얄 오페르가 소유한 조디액그룹 소속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6개월을 넘긴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에 재보복을 가하고 이란이 이를 다시 응징하는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면 중동전쟁 확대를 피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은 헤즈볼라와 후티 등 친이란 무장세력을 총동원할 것이고, 이스라엘도 기다렸다는 듯 미국의 참전을 요구할 수도 있다. 1973년 10월 시리아와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시작된 4차 중동전쟁 이후 50여년 만에 전면전이 발발할 위험이 커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5차 중동전쟁은 이란이 통제를 시도할 수 있는 호르무즈해협에 집중될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수출로로, 전날 이란이 이곳에서 이스라엘 선박을 나포한 것도 위협이 가시화하는 양상으로 비칠 수 있다. 5차 중동전쟁으로 장기화되면 1973년 ‘오일 쇼크’ 같은 최악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류지영 기자
2024-04-15 1면